고구마 치즈 돈가스
2부 17장 연고의 기색 6~10화 본문
6화
강한 바람과 무언가의 힘
레녹스
아, 아뇨. 파우스트 님은 별로…….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으실 거라
생각합니다만…….
피가로
너한테는 그렇겠지.
하지만, 지금 그의 입장은 복잡해.
레녹스
파우스트 님의 입장이 아니라,
파우스트 님에게 있어서
피가로 님의 입장인 게…….
피가로
레녹스.
레녹스
네, 죄송합니다.
레녹스와 의견이 부딪혔다.
예전 같으면 부딪히지 않았을 것이다.
400년 전의 우리가 아는
파우스트라면 내가 조력자로 나타났을 때
분명, 이렇게 대답한다.
『심려를 끼쳐 죄송합니다.
피가로 님이 와주신 덕분에
살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파우스트는 이럴지도 모른다.
『왜 일부러 온 거야.
만약을 위한 보고라고 했잖아.
그렇게까지 난 한심한 건가?』
피가로
잘 생각해 봐.
임무에 나갔다가 자고 돌아오는 일은
흔하잖아.
레녹스
확실히…….
피가로
우리가 너무 소란 피우면
파우스트가 학생들에게 바보 취급을 받을 거야.
특히 시노는 건방진 면도 있고.
레녹스
시노는 시노대로
파우스트 님을 존경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피가로
알고 있어.
적어도 아침까지 기다리자.
아침까지 기다렸다가, 돌아오지 않으면
동쪽 나라로 가자.
그걸로 어때?
레녹스는 지독한 얼굴로
안경을 밀어 올렸다.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끄덕인다.
레녹스
알겠습니다.
피가로
응.
미틸, 어쩌면
내일 아침 일찍 나가게 될지도 몰라.
같이 갈래?
기다리고 있어도 좋지만.
미틸
갈래요!
시노 씨나 히스클리프 씨가
걱정되니까…….
피가로
알겠어.
그럼, 그렇게 하자…….
강한 바람이 불어, 갑자기 문이 닫혔다.
그냥 그뿐이었는데,
묘하게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잘못 판단한 걸까.
빨리 달려가야 하는 걸까?
하지만 더 이상 쓸데없는 짓을 해서
파우스트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아.
그 아이는 강한 마법사다.
다소 곤란한 일이라도 자력으로 해결할 수 있다.
보호자 행세는 그만두는 편이 좋다.
오즈와 아서처럼은
될 수 없었으니까.
미틸
동쪽 마법사분들이나
다른 사람들이 돌아왔을 때를 위해
식당을 깨끗하게 해 두고 올게요.
레녹스
응, 그게 좋겠다.
루틸은 슬슬 돌아오려나.
어서 돌아왔으면 좋겠는데…….
루틸
미틸, 피가로 선생님,
어디에 계신 걸까…….
중앙의 왕도를 하늘에서 한 바퀴
돌아봐도 보이질 않네…….
길이 엇갈린 걸까.
레노 씨, 걱정스러워 보였어…….
파우스트 씨와는 옛 친구라고
하셨고…….
동쪽의 마법사분들,
무사하셨으면 좋겠는데…….
……어라?
저 사람,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듯한데…….
나를 향해 흔들고 있는 건가?
가주고 싶지만,
지금은…….
……!? 앗……!?
갑자기 제어가……!?
무언가의 힘으로 지상에 끌어당겨지고 있어!?
떨어진다……!!
…………!!
아야야……!
아이작
………….
루틸
앗! 죄, 죄송해요!
받아주셔서.
다친 곳은…….
거리의 사람
큰일이다! 사람이 떨어졌어!
마법사다! 빗자루에서 떨어졌다고!
거리의 아이
루틸 씨! 루틸 씨다!
루틸
앗, 으음, 안녕하세요.
거리의 사람
아아! 루틸 씨잖아!
전에 이 아이의 부상을 치료해 준
남쪽 마법사님!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다, 루틸 씨.
늠름한 형씨도 잘했어!
굉장히 힘이 세네!
거리의 아이
엄청 힘센 사람!
나도 들어 올려줘!
아이작
………….
거리의 사람
아이고, 너무 떠들어대서 미안해.
이건 좋은 걸 보여준 답례야.
자, 받아줘.
아이작
……술?
거리의 사람
그래. 오늘 밤은 즐겨줘!
거리의 아이
커다란 사람, 엄청났어!
거리의 사람
엄청났지!
너도 많이 먹고
커다래지는 거야.
거리의 아이
아하하하!
아이작
………….
루틸
핫……!
죄송해요, 받아주신 채로
멍하니 있었어요!
지금 내려갈게요!
읏차……!
상처는 없으신가요!?
어라……?
혹시 낮에 뵈었던
피가로 선생님의 지인…….
아이작
그래.
아이작이야.
루틸
아이작 씨…….
아이작
루틸?
루틸
네.
루틸 플로레스라고 해요.
아이작
다행이다, 불러 세워서.
밤에는 심심하니까.
미스라도 없는 것 같아.
내 말동무가 되어줘.
술도 받았고.
루틸
미스라 씨……?
미스라 씨도 알고 계신가요?
아이작
미스라는 다 알아.
마법사라면.
루틸
당신도 마법사……?
혹시 지상으로 끌어당긴 건
당신인가요?
아이작
그래.
루틸
그랬었군요.
깜짝 놀랐어요.
미스라 씨도 억지스러운 면이
있지만, 그건 조금
위험해요. 떨어질 뻔했어요.
아이작
………….
루틸
하지만 구해주신 것도
당신이었죠.
감사합니다, 아이작 씨.
피가로 선생님과 미스라 씨의
지인과 만나게 되어서 기뻐요.
아이작
나도야.
그렇지……. 이 술을 줄게.
얼른 마시자.
루틸
음…….
아이작
이 거리의 녀석들은, 싫은 녀석도 있지만
좋은 녀석도 있어.
좋은 녀석 쪽이 더 많아.
하하……. 뭔가, 사자.
배고파.
루틸
아…….
모처럼 초대해 주셨지만,
오늘 밤은 급한 일이 있어서…….
아이작
………….
루틸
다음에 같이 술을 마셔요.
미스라 씨나 피가로 선생님도 함께.
아이작
급한 일?
루틸
네.
아이작
그건?
루틸
피가로 선생님과 제 동생이
아직 마법관에 돌아오질 않아서…….
찾고 있던 중이었어요.
아이작
피가로가…….
그 피가로가 없는 건가.
루틸
네, 에…….
아이작
………….
큰일이네.
그럼, 같이 찾자.
루틸
아뇨, 괜찮아요.
말하는 방식이 안 좋았네요.
갑자기 사라진 게 아니라…….
아이작
루틸.
루틸
네.
아이작
나를 따르는 게 좋아.
루틸
………….
아이작
……이상한 표현으로 말했나?
힘이 되고 싶어서…….
루틸
아뇨, 뭐라고 할까…….
미스라 씨랑 조금 닮은 것 같아서.
악의가 없는 것 같은 점도.
아이작
피가로가 있을만한 곳이 있어.
건너편의……. 저쪽 방향이다.
같이 가자.
루틸
건너편?
변두리까지 가신 걸까요…….
아이작
루틸, 얼굴을 보여봐.
루틸
얼굴? 앗…….
아이작
………….
루틸
그……. 그렇게,
얼굴을 잡아당기시면,
목이 늘어나 버릴 것 같아요…….
아이작
생업은?
루틸
생업? 일이요?
남쪽 나라에서는 교사를 하고 있었어요.
아이작
사람에게 물건을 가르치는?
루틸
네…….
아이작
행복했겠네.
루틸
그렇……, 죠…….
행복했어요.
아이작
………….
루틸
……아이작 씨는, 그렇지 않았나요……?
아이작
응?
루틸
슬퍼 보이는 얼굴을 하시니까…….
아이작
이건 틀려.
기쁨이야.
루틸
………….
아이작
가자.
루틸
네……, 네.
7화
달밤에 방문할 곳은
아서
………….
오즈 님의 진짜 과거인가…….
그걸 알고, 나는 어떻게 하게 될까.
만약 잔인하고 끔찍한 일을 한 전설이
사실이라면, 나는…….
…………!
갑자기 창문이……. 바람 때문인가……?
오웬
나야.
아서
오웬!
오웬
흥. 태평한 왕자님.
내가 자객이었다면 지금쯤 심장을 찔렸을 거야.
넌 죽었어.
아서
걱정해 줘서 고마워.
카인에게서도 자주 들어.
확인하고 창문을 열…….
오웬
그 녀석 이름은 꺼내지 마!
아서
……카인 말이야?
카인과 무슨 일 있었어?
오웬
꺼내지 말라고 했잖아.
……아니, 카인 이야기를 하자.
실망시켜 줄게, 왕자님.
아서
실망? 내가?
오웬
그래. 듣고 싶어?
아서
음…….
실망하게 될 이야기라면 듣고 싶지 않아.
오웬
뭐? 들어.
아서
실망할 이야기라면 듣고 싶지 않지만,
카인에게 실망하게 될 이야기라면
나는 실망하지 않을 거라 생각해.
오웬
그런데 하는 거야.
비명을 지르고 실신해 버릴지도.
분노에 미쳐서 검을 뽑을지도 몰라.
아서
믿기 힘드네.
하지만 잡담을 할 거라면
차를 끓여 올게. 뭐가 좋아?
오웬
진지하게 들어.
네 기사가
기사 체면을 잃으려 하고 있다고.
아서
그의 명예가
위험에 처해 있는 건가?
오웬
위험하다면 위험한데.
요건대 타락이야.
카인이 선택했어.
아서
카인이 타락을 선택했다?
오웬
그래.
의심스러우면, 보러 가면 돼.
그 녀석은 서쪽 나라의 욕망에 빠져
나라와 널 팔아치우려 하고 있어.
그 모습을 보여줄게.
아서
………….
필요 없어.
오웬
어째서?
진실을 아는 게 두려운 거지.
아서
카인을 믿고 있어.
카인에겐 무언가 생각이 있을 거야.
그가 나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다면,
나는 보지 않아.
그를 믿고 기다릴 뿐이야.
오웬
잘난 듯이…….
넌 구역질 나는 위선자에
진실을 외면하는 겁쟁이야.
그렇게 자랑스러워하던 남자가
너 때문에 수치를 모르는 짓을 하고
타락하려는 거야.
영혼보다도 소중한 것을
팔려고 하는 거야.
가슴 아프지 않아?
아서
뭐?
아픈 게 당연하잖아.
나를 위해?
오웬
그렇게 말했어.
아서
못 들었어.
카인은 또 그런 짓을 하고 있는 건가.
오웬
그래! 열받지!
아서
화가 난다기보단 슬퍼.
마음을 배신하는 일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지금이라면 멈출 수 있을까?
그게 사실이라면 사정이 달라져.
지금이라면 멈출 수 있을까?
오웬
글쎄.
왕자님이 말리고 싶다면
도와줘도 괜찮은데.
아서
구체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어.
카인은 무엇을 위해서,
뭘 하려는 거야?
그가 깊이 생각하고 결심했다면,
당장 달려가 말리고 싶지만
속셈이 있다면 그의 의사를 존중하고 싶어.
오웬
안 해도 돼.
너는 주군이잖아.
명령하고 따르게 하면 돼.
아서
카인은 친구야.
다짜고짜 따르게 하고 싶은 게 아니야.
오웬
있잖아…….
왜 착한 아이인 척하는 거야.
그 녀석이 타락하면 싫잖아?
아서
어째서 카인이 타락하지?
오웬
내가 부추겼어.
여자를 놀리고 도박을 즐기고
술에 빠지는 천박한 녀석이 되도록.
아서
되었어?
오웬
됐어.
아서
진짜……?
마법을 건 것도 아니고?
오웬
그래.
카인의 본성이었을지도.
아서
그렇지 않아, 오웬.
오웬
………….
아서
아까 너는 나에 대해
진실을 외면하는 겁쟁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야말로
진실이라고 확신하고 있어.
카인이든, 오즈 님이든
내가 아는 모습이 진짜 모습이라고.
오웬
왜 오즈가 나오는 거야.
듣기 싫어, 그런 이름.
아서
………….
오웬
뭐야?
아서
아니…….
그런가, 기억 안 나는구나.
오웬
뭐?
아서
후후……. 난 질투 났어.
그렇게 다정한 얼굴,
재회하고 나서는 좀체 못 봤으니까.
오웬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아서
그건 피차일반이야.
카인의 사정을 모르지만
내가 가면 그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까.
오웬은 어떻게 생각했어?
오웬
몰라.
난 괴롭히고 싶을 뿐이야.
아서
………….
알겠어.
데려가줘.
네가 더 빨리
서쪽에 도착할 수 있겠지.
오웬
뭐 그렇지.
어떻게든 데려다 달라고 한다면,
데려가주지 못할 것도 없지만.
아서
어떻게든 데려가줘.
내 기사의 중요한 일이니까.
오웬
흥…….
아서
알려줘서 고마워.
오웬
………….
……너무 혼내지 마.
아서
응? 너를?
오웬
카인말이야.
너에게 혼난다면 풀 죽을 거야.
아서
풀 죽지 않아. 나한테 혼난다 해도
카인은 하고 싶은 걸 해.
오웬
흐응…….
그럼, 화 안 나?
아서
화나.
나도 하고 싶은 걸 할 거야.
오웬은?
오웬
내가 뭐?
아서
하고 싶은 걸 하고 있어?
오웬
당연하지.
난 북쪽 마법사야.
아서
그럼 다행이야.
오웬
………….
탑까지 내 빗자루에 태워줄게.
이리 와.
아서
알겠어. 고마워.
오웬
떨어지지 마. 곤두박질쳐서 부서질 거야.
아서
어렸을 때부터
오즈 님의 빗자루에 태워졌었어.
떨어질 리가 없어.
오웬
건방져.
아서
두근거리기 시작했어.
함께 카인을 도우러 가자.
오웬
함께가 아니야.
너 혼자 알아서 하는 거야.
아서
오웬은?
오웬
그 방해를 해.
아서
뭔가 복잡하지만,
서로 최선을 다하자.
오웬
입 다물어. 혀 깨문다.
리케
………….
대체 여긴 어디일까요…….
오즈의 귀가가 늦기에
신경이 쓰여 찾으러 나왔더니,
이상하고 아름다운 장소에…….
무척 넓은 화단이에요.
누가 만들었으려나.
미틸이나 루틸을 불러서
보여주고 싶어요.
꽃을 좋아하니까.
…………?
방금 무슨 소리가…….
누구세요?
???
그건 이쪽이 할 말일세.
리케
당신은…….
본 적 없는 노인이시네요.
그대도 본 적 없는 소년이구나.
어디서부터 헤매온 게냐.
위병들에게 들키면
목을 베일 게다.
찾은 게 나라서 다행이군.
리케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
하하……. 이상한 아이구나.
뭐 좋아. 내 머리가 보여주는
환상일지도 모르지…….
리케
환상이 아니에요.
???
뭐든 좋아.
하아…….
……아름다운 화원이야…….
리케
저도 그렇게 생각하던 참이에요.
???
마음이 씻겨져 가…….
가능하다면 태양 아래서
다시 한번 보고 싶었는데…….
이 세상에서 보는 마지막 경치에
어울리는…….
리케
……이 세상에서 마지막……?
???
……아니……. 잊어주렴…….
리케
…………?
저것…….
달을 올려봐 주시겠어요?
???
왜냐.
리케
얼굴을 자세히 보고 싶어서요.
당신을 닮은 사람을
본 적이 있는 것 같아서…….
???
하하……. 그렇겠지.
지폐나 동전으로…….
리케
아뇨, 그게 아니라…….
아, 생각났어요.
서쪽 나라의 천공별궁이라는 곳에
살고 계신
안토니오 님이에요.
초상화가 보내진 걸
무르가 보여줬어요.
???
안토니오인가…….
안토니오에겐 흉도(凶刃)가
미치지 않아 다행이야…….
모두에게 매달리며
나는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지 못했다.
……살아갈 수 없었지.
그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무서운 일이
일어날 줄은…….
리케
……괜찮으신가요?
달빛 때문만이 아니라
안색이 나쁜 것 같습니다만…….
???
됐다…….
모든 것은 늦었어…….
리케
고민이 있다면 이야기해 주세요.
저는 신의 사도이자 현자의 마법사.
리케 오르티스라고 합니다.
???
……현자의 마법사…….
리케
네. 지금까지도 각지에서 일어난
온갖 이변을 해결해 왔습니다.
부디 상담해 주세요.
???
……윽, 현……, 현자님에게,
부디, 전해주세요…….
저를……, 이 나라를 구해…….
……읏, 큭……, 으윽……!
리케
왜 그러세요!?
머리가 아픈 건가요!?
???
……큭, 으으…….
………….
그래서…….
나는 여기서 대체 무엇을…….
리케
괜찮으신가요?
???
그대, 본 적 없는 얼굴이구나.
위병들에게 들키면 목이 베일 게다.
어서 돌아가려무나.
리케
하지만…….
???
나도 돌아가야지.
오오, 춥구나 추워…….
리케
………….
같은 말을 두 번 말했다.
오즈
리케.
리케
오즈.
당신을 찾고 있었어요.
오즈
숙소에서 기다리라고 했을 터다.
기척을 더듬기 전에 몇 번이나 잠들었는지…….
리케
옷에 흙이 많이 묻어있네요.
털어드릴게요.
오즈
아마도 이곳은 귀족이나 왕족의 땅일 것이다.
높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건너편에 성이 있어.
리케
그랬군요.
노인을 만났어요.
현자님께 전언을 받았습니다만…….
오즈
뭐라고 했지?
리케
도중부터
상태가 이상해졌어요.
그래서 못 들었어요.
오즈
………….
내일 여기가 어디인지 확인하지.
리케
그래요.
카인이라면 알지도
모르고.
아서 님과 이야기할 수 있었나요?
오즈
………….
리케
아서 님을
만나러 간 거잖아요?
오즈
너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리케
있거든요.
오즈
……공무로 바빴다.
말은 걸지 않았다.
리케
그랬나요.
말을 걸었다면
기뻐하셨겠지만
때를 알고 있는 건 좋은 일이에요.
오즈
그런가.
위병의 목소리
침입자다! 찾아라!
아마 마법사다!
조심해라……!
리케
……?
왠지 저쪽이 시끄럽네요.
무슨 일이 있는 걸까요?
오즈
숙소로 돌아간다.
말려들면 성가셔.
리케
알겠어요.
8화
눈을 뜬 무언가
에바
………….
……소피, 어째서…….
미스라
《아르시무》
에바
…………!
스노우
오오!
화이트
에바다!
훌륭하구나, 미스라야.
미스라
말했잖아요.
제 탐색에서 벗어날 순 없다고.
브래들리
잘했어, 미스라.
여기서 기다려.
미스라
허?
브래들리
에바!
에바
가까이 오지 마!
미스라까지 데려오다니…….
브래들리
미안해. 용서해 줘.
당신과 이야기가 하고 싶었어.
에바
도련님.
이 이상 응석부리게 하지 않아.
그 녀석들을 데리고 돌아가.
미스라
에바, 오랜만이네요.
치렛타는…….
에바
가까이 오지 마!
스노우
미스라, 미스라.
에바가 말하는 대로.
화이트
움직이지 말거라.
그렇다곤 해도 미움받고 있구먼.
미스라
전에 치렛타와 함께
에바의 거처에 방문한 적이 있어서요.
에바
그 이상 말하면 죽일 거야.
미스라
이사하지 않아도 됐는데.
에바
본론을 말해.
미스라
너무 화내고 있어요.
에바.
치렛타는 죽었어요.
에바
알고 있어.
미스라
그런가요.
에바
치렛타의 마도구는
네가 이어받은 건가.
미스라
네.
에바
한심한 남자.
그 대마녀의 도구를 손에 넣고도
쌍둥이의 목조차 취하지 못하고 있다니.
미스라
………….
에바
그녀의 예상이 틀렸네.
미스라
……하?
스노우
이쪽 보지 말거라, 미스라야.
화이트
도발에 넘어가지 말렴, 미스라 짱.
미스라
원한다면 언제든
해줄 수 있는데요?
스노우
안 늦었다─.
화이트
괜찮아─. 사이좋게 지내자─.
브래들리
미스라한테 불 붙이지 마, 에바.
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이야.
다들 당신을 탄복하고 있어.
에바
입만 살아서는…….
좋아.
조금은 시간을 내줄게.
이야기하고 싶다는 건?
브래들리
서쪽 나라에 가까이 가지 말라고 했지.
무언가가 눈을 떴다고.
당신도 알고 있겠지만,
지난 번의 〈거대한 재액〉의 습격 이래
세계에 이변이 일어나고 있어.
멸망했을 터인 것이 소생하거나
없어져야 할 사념이
강대하고 기묘한 힘을 가지거나.
그런 이변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이계에서 온 현자와
여기저기 뛰어다녔어.
에바
수고가 많네.
브래들리
그렇지도 않아.
감옥에 있는 것보단
현자와 나가는 편이 재밌어.
에바
어떤 아이?
브래들리
현자 말이야?
에바
그래.
브래들리
혼자선 만족스럽게 날지 못하는 새야.
하지만 크게 자랄 가능성은 있어.
비바람에도 도망치지 않아.
도망칠 수 없는 걸지도 모르지만
자신의 속도로 뿌리를 내리는 힘이 있어.
당신과도 만나게 하고 싶어.
에바
기회가 있다면.
브래들리
부탁해.
그래서, 이야기를 되돌리자면
위험한 게 눈을 떴다면
먼저 알아두고 싶어.
현자에게 알리고 싶으니까,
같은 건 구실이고, 미스라도 나도
기분전환이 하고 싶거든.
당신한테 가까이 가지 말란 소릴 들으면,
가까이 가고 싶어져.
에바
………….
스노우
에바는 기가 막힌 모양이구나.
충고를 무시했으니
어쩔 수 없지.
화이트
호호호, 그렇지도 않네.
에바는 건방진 아이를 좋아하지.
심쿵 에피소드일세.
에바
죽고 싶어?
스노우 · 화이트
무서워─!
브래들리
에바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마.
있잖아, 부탁해. 자세히 알려주지 않겠어?
도대체 뭐가 눈을 뜬 거야?
에바
관련되면 불쾌한 생각을 하게 될 뿐이야.
기분 전환은 되지 않아.
브래들리
그건 이야기를 듣고서 정해.
부탁해, 에바.
미스라
말하지 않는다면
당신으로 기분전환해도
상관없…… 으으읍!
브래들리
미스라도 부탁한대.
에바
……알겠어.
알려줄게.
두 달쯤 전…….
제자인 소피의 견문을
깊게 하기 위해 시간을 들여
대륙을 돌아다녔어.
어느 날 서쪽 나라의 서안제도에서
거센 땅울림이 울리고, 바다가 거칠어졌어.
죽은 자도 아니고 산 자도 아닌 것이
해저에 가라앉은 섬에 숨 쉬고 있는
기색이 느껴졌어.
스노우
가라앉은 섬……?
어디선가 들어본 이야기구나.
화이트
샤일록이 관련되어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 분명…….
오오, 애덤즈 섬일세.
과거 볼더 섬의 근처에 있던 섬.
브래들리
……볼더 섬.
거기선 달의 소환식의 흔적이
발견됐었지.
에바
달의 소환식?
스노우
그래.
그대도 알고 있는 건가?
에바
………….
브래들리
에바?
에바
……소피가 의식의 흔적을
발견했다고 했어.
브래들리
당신 제자가?
에바
이 마을의 북동쪽에 있는 숲을
넘은 평원이야.
지금은 가까이 갈 수 없어.
혼돈이 질서를 방해하고
정령들이 미쳐 날뛰고 있어.
소피에게도 접근하지 말라고 했어.
그 아가씨는 흥미를 가진
모양이었지만…….
미스라
제자가 생겼나요, 에바.
에바
너랑은 관계없어.
미스라
관계있어요.
치렛타가 당신에게 제자가 생긴다면
저와 싸우게 한다고 했으니까.
에바
웃기네.
내 제자가 너 같은
악동한테 질 것 같아?
……아니.
이제 내 제자가 아니야…….
그건 나를 배신했어.
브래들리
그렇게 정해두지 마.
어쩌면 무슨 사정이
있을지도 모르잖아.
달의 소환식에
흥미를 가졌다며?
질서가 어지러운 곳에 접근해
미쳐 날뛰는 정령들에게 삼켜져
버린 거 아니야?
에바
그건 아니야.
정령들에게 삼켜졌다 해도
그 아이의 기척은 알 수 있어.
그 장소에 소피는 없어.
미스라
누군가에게 돌이 되어서
먹힌 거 아니에요?
에바
있을 수 없어.
미스라
있을 수 없진 않잖아요.
작은 아가씨 하나, 전 간단하게 돌로 만들 수 있어요.
어느 정도의 마력을 갖고 있었어요?
에바
………….
언젠가 오즈를 넘을 거야.
미스라
하?
9화
마녀가 남긴 말
스노우
호호호!
치렛타도 그런
말을 했었지.
화이트
미스라가 오즈를 능가하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돌이 되었지.
뭐, 당연한 게야!
스노우 · 화이트
오즈는 우리가 키운 아이니까!
에바
언젠가 소피가 죽일 거야.
미스라
그냥 들어 넘길 수 없네요.
저는 지금 언제든 오즈를 쓰러뜨릴 수 있어요.
봐주고 있다고요.
에바
어째서?
미스라
오즈는 지금, 밤…….
브래들리
거기까지야, 미스라.
에바랑 쌍둥이들도
말싸움은 나중에 해줘.
에바.
소피의 행방에
짐작 가는 건 없어?
당신의 제자는
당신을 배신하려던 게
아닐지도 모른다고.
에바
그건 네 소망이겠지.
브래들리
완고하네.
배신했다는 확증이라도 있는 건가?
에바
………….
난 소피에게 명했어.
내가 다른 토지에서 용무를 끝낼 때까지
이 마을에서 기다리라고.
브래들리
여기였던 건가. 그래서?
에바
돌아왔을 때, 그 아이는 없었어.
필사적으로 찾았지만
찾을 수 없었어.
그 아이의 돌의 기척도 없었어.
돌아와서, 마을 사람들에게 물었지.
소피를 보지 못했냐고.
브래들리
그래서?
에바
………….
키가 큰 남자와 마을을 나갔다고.
스노우
아─.
화이트
아─ 그런 건가.
미스라
응? 뭐예요?
스노우
왜, 사랑의 도피라던가.
화이트
애정이나 사랑이 아니라 해도
힘든 수행보다 다른 하고 싶은 일이
생긴 가능성은 있겠지.
에바
………….
죽일 거야.
브래들리
진정하라니까!
소피라는 녀석은 혹시
다른 재능이 있진 않았어?
에바
다른 재능?
브래들리
요리라던가 대장일이나 바느질 같은 거.
가게를 낼 수 있을 만한 거.
미스라
훌쩍 여행을 떠나
호수에서 시를 낭독하는 타입의 인간이랑
딱 맞았다던가.
에바
너희들, 까불지 마.
요리니 시니 허튼소리를.
브래들리
허튼소리도 아닌데?
미스라
허튼소리도 아니에요.
에바
이 이상
너희들을 상대해 줄 순 없어.
이야기는 그것뿐인가.
브래들리
마지막으로 하나.
노바라는 마법사를 알고 있어?
마법으로 모습을 바꾸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긴 백발에 한쪽 눈엔 상처가 있고,
다른 눈이 의안인 마법사야.
제법 강해.
미스라도 죽일 수 없었어.
어느 나라의 것도 아닌 묘한 기척이 나.
키는 크다고 하면 커.
달의 소환술에 관련되어 있는 것 같아.
짚이는 곳은?
에바
………….
몰라.
하지만 그 녀석이 소피를
유괴한 거라면
내가 그 녀석을 죽일 거야.
브래들리
수고를 덜어서 살았네.
하지만 조심해.
나랑 미스라, 오웬,
또 한 명의 마법사가 함께 싸워서
돌로 만들지 못했어.
노바는 주문조차 입에 담지 않았어.
아직 여력이 있겠지.
에바
……기억해 둘게.
스노우, 화이트.
스노우
무엇인고.
화이트
말해보거라.
에바
북쪽 마법사는 잊지 않아.
너와 피가로가 인간의 편이 되어
저 도령을 사냥한 것을.
브래들리
………….
에바
수치도 모르는 것.
스노우
호호호. 에바여.
짐승 같은 마녀야.
전부 마법사를 위해서다.
화이트
그대처럼 단순하면 알 수 없는
세상의 이치란 게 있단다.
에바
미스라.
미스라
네에.
에바
자랑스러운 치렛타의 제자여.
기억해 둬라.
너는 치렛타와 마찬가지로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마법사.
자신의 눈으로 보고, 스스로 생각해라.
이 세계에 무관심하지 마라.
늙은이에게 이용당한다.
오즈에게도 전해.
미스라
아, 잠깐…….
사라져 버렸네요.
브래들리
에바…….
미스라
무슨 의미예요?
늙은이에게 이용당하지 말라니.
스노우
나, 몰라─.
마음은 젊은 걸.
화이트
나도 유령이지만 마음은 청춘인 걸.
미스라
하아. 그런가요.
어떡할래요? 브래들리.
당신이 여기까지 데려와
달라고 했잖아요.
브래들리
그렇지…….
에바가 말한
볼더 섬이라도 가볼까.
스노우
이 경치에서 볼더 섬으로인가.
화이트
살아있었다면 감기에 걸렸을 게다.
유령이라 다행인가.
스노우
하지만 곧 밤이 된다.
화이트
우린 그림 속으로 들어가 버리지.
슬슬 마법관으로 돌아가는 편이
좋지 않겠나?
브래들리
확실히.
미스라
볼더 섬이 어디였죠.
브래들리
몇 번인가 현자랑 같이 갔던 섬이야.
이 전에도 볼더 섬의 새로운 성주인지 뭔지한테 초대받았지.
결국 새 성주는 돌아오지 않고
너랑 오즈가 왜인지
엉망진창으로 싸웠는데…….
미스라
어디서든 싸우니까요…….
뭐, 됐어요. 어딘지 모르겠지만
대충 감으로 가죠.
스노우
볼더 섬에 가는 건가?
대충 감으로……?
화이트
대충 공간의 문을 여는 거야……?
브래들리
그거 괜찮냐……?
미스라
괜찮아요. 문제없어요.
스노우 · 화이트
불안하구나…….
브래들리
위험한 장소에 갔을 때를 위해
후추 꺼내둘까…….
미스라
네─에, 갑니다.
《아르시무》
스노우 · 브래들리 · 화이트
…………!?
미스라
볼더 섬에 도착했어요.
그림 속의 스노우
볼더 섬!? 바다는?
그림 속의 화이트
여기 볼더 섬 아니지 않아!?
브래들리
앗, 너희들 그림이 됐어!
벌써 해가 져버린 모양이군…….
미스라
볼더 섬이잖아요.
보세요, 파도 소리도 들리잖아요.
그림 속의 화이트
파도 소리? 들려……?
미스라
들려요. 귀를 기울이면…….
???
꺄아아아악……!
미스라
어라?
그림 속의 스노우 · 화이트
비명일세!
그림 속의 스노우
브래들리!
브래들리
뭐야. 구하라고?
그림 속의 화이트
봉사활동을 하면 포상이란다!
브래들리
어쩔 수 없네. 가자, 미스라!
미스라
저도 가나요?
브래들리
기다리고 있어도 할 거 없잖아.
여긴 볼더 섬이 아니야…….
서쪽 나라는 서쪽 나라긴 한 것 같은데,
풍요의 거리 근처 아니야?
멀리서 보이는 저거…….
저게 서쪽 나라의 왕궁이야.
그렇단 건, 역시
여긴 풍요의 거리 주변이구만.
그림 속의 스노우
역시 사수구나. 눈이 좋아.
그림 속의 화이트
풍요의 거리라고 하면
서쪽과 중앙의 마법사들이
방문하고 있지 않았나?
???
살려줘! 누가……!
브래들리
이 안이야. 들어간다.
미스라
제가 갈게요.
10화
귀공자의 눈동자
우리가 왕립 식물원에서
코르테제 성으로 돌아왔을 무렵에는
완전히 날이 저물었다.
모르는 토지에서 밤을 맞이하면
아직도 조금은 불안과 긴장을 느낀다.
믿음직한 마법사들과
함께라고 해도.
하늘에 달빛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무르
현자님, 어서 와─!
라스티카
어서 오세요, 현자님.
고생 많으셨죠.
먼저 코르테제 성으로 돌아간 무르와
라스티카가 우리를 맞이해 줬다.
아키라
다녀왔습니다.
괜찮아요.
저는 빗자루에 태워지기만 했으니까요.
라스티카
그럼 다행이네요.
자, 저택 안으로 들어가
따뜻한 차를 마시죠.
라스티카의 신부는
이미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 이야기를 들은 후라서,
밝은 라스티카의 미소를 보니
복잡한 기분이 되었다.
그를 상처 입히는 이야기를,
클로에가 하지 못했던 기분을
이해한다.
화창하고, 고상하고, 행복해 보이는
라스티카의 눈동자를 바라보면
누구라도 지키고 싶어 진다.
아키라
(북쪽 마법사들조차
좀처럼 라스티카에게 죽이겠다
말하지 않고……)
(라스티카가 슬퍼할 것 같은 일이
없으면 좋겠는데……)
(만약 닥쳐왔을 때, 어떻게 되는 걸까.
나는……. 클로에는…….
라스티카 자신은……)
클로에
다녀왔어, 라스티카.
라스티카
어서 와, 클로에.
왕립 식물원은 즐거웠니?
클로에
응……..
그, 또, 다음에 가자.
라스티카
다시 한번 왕립 식물원에?
그렇게 마음에 들었던 거야?
샤일록
왕립 식물원에 무르의 영혼 조각이
있을지도 몰라요.
한밤중에 나타나는 망령이
무르와 같은 필적으로 일지를 쓰고 있어서.
라스티카
그건 대단한 발견이네!
역시 우리의 운명은 위대한 무르와
이어져 있구나.
멋져, 샤일록.
소중한 친구와 몇 번이나 만날 수 있다니.
라스티카의 말을 듣고
샤일록은 눈을 깜박였다.
짧은 시간 뒤, 조용히 웃는다.
샤일록
성가시고 귀찮은 사람이긴 하지만…….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그때, 코르테제 성의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장년의 집사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현자님.
방의 준비가 끝났습니다.
그레고리
정말 늦는다고…….
늘 갑작스러운 손님에 대비해서
준비해 두라고 말했었는데.
장년의 집사
항상 준비해 주는 일머리 좋은 청년이
요즘 쉬고 있어요.
무슨 일 있는 걸까, 그레고리 씨.
그레고리
내가 그레고리야.
아까 다른 사람한테 설명했는데
전달받지 못했나.
장년의 집사
그레고리 씨, 새가 된 거예요?
그레고리
여러 가지 일이 있어서. 내가 새가 된 것과
손님이 왔을 때의 대응에 대해서는
정리해서 인수인계 사항에 적어둘게.
장년의 집사
도움이 돼요.
그레고리
됐어. 기록은 잘하니까.
지금이라면 깃펜도 직접 만들 수 있고.
장년의 집사
아하하하!
그레고리
아하하가 아니잖아.
코르테제 성의 사람은
느긋하고 밝았다.
그들로부터 오늘 밤의 일정을 들은
그레고리가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그레고리
현자님, 이 뒤에 릴리아나 님과
코르테제 성의 성주 부부가
바넷 각하와 만찬을 가집니다.
생가를 나와 왕궁에서 살게 될
릴리아나 님에게는
이 성에서의 마지막 식사가 됩니다.
지극히 사적인 것이고,
한 번 시작하면 끝날 때까지
꽤 시간이 걸리겠지요.
바넷 각하는 아키라 님을
부르실 것 같다지만,
혹 피곤하시다면…….
말하기 어려워 보이는 그레고리에게
나는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엄숙한 만찬에 섞이기보다는
다 같이 식사하는 게 좋아.
아키라
저희는 간단한 식사를
할 수 있으면 충분해요.
이 뒤에 왕립 식물원에도 가고 싶어서…….
그레고리
그렇게 말해주셔서 다행입니다.
주방장이 너무 힘을 낸 바람에
사람 당 열 접시 이상을 준비해 버려서.
아키라
열 접시…….
그레고리
여러분께는 적당한 양으로 정리해
한 번에 내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현자님…….
아키라
뭔가요, 그레고리.
그레고리
왕립 식물원으로 가실 때,
저는 이 성에 남아있어도 될까요?
릴리아나 님과 이야기할 틈이 있다면
직접 이야기하고 싶어서…….
그레고리의 요구는 으뜸이었다.
그는 릴리아나 공주의 이변의 수수께끼를
알아내기 위해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양해하려고 한 순간,
무르가 입을 열었다.
무르
관두지 그래?
혼자 말을 걸어서 새가 되었어.
이번엔 뭐가 될지 몰라.
샤일록
저도 무르에게 동의해요.
당신이 식물원까지 동행하길
바라는 건 아닙니다만…….
저희가 없는 장소에서
위험한 일을 당하지 않았으면 해요.
그레고리
아아……. 고마워.
너희들 상냥하구나…….
클로에
당연하지, 친구니까!
하지만 빨리 수수께끼를 밝혀내고 싶은
마음도 이해해…….
성에 남아서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기만 하는 건?
그것만으로도 무언가 알아낼지도 몰라.
라스티카
그렇네.
너무 위험한 일은 하지 않도록.
무르의 말대로 그녀는 작은 새로…….
……작은 새로…….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고
라스티카는 헛소리처럼 중얼거린다.
고귀하고 밝은 푸른 눈동자는
그레고리를 바라보는 것 같으면서
허공을 헤매고 있다.
달빛이 새장처럼
우리를 가둬놓는다.
달빛에 창백하게 젖은 클로에의 뺨에
잔잔한 긴장이 흘렀다.
라스티카가 살짝,
화려한 새의 날개에 손을 뻗는다.
그레고리
……왜 그래? 라스티카?
그레고리가 목을 기울인다.
딱딱, 부리가 흔들리고
라스티카는 눈을 깜박였다.
라스티카
아…….
미안해. 무슨 이야기였지?
그레고리
잊어버린 거야?
눈앞에서 지금까지 말했는데?
클로에
미, 미안해.
라스티카는 조금 건망증이 있어.
그레고리랑 릴리아나 님의 이야기야.
라스티카
그랬지.
그레고리, 충분히 조심해.
그레고리
고마워. 너희도 조심해.
그때, 나는 생각도 못했었다.
어째서
그레고리는 마법으로 새가 되었을까.
어째서
라스티카의 마도구는
새장인 걸까.
어째서 라스티카는,
신부라고 생각한 사람을 마법으로 새로 만들어
새장에 가두려는 걸까.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다시 한번 왕립 식물원으로 향했다.
한밤중에 나타나는 망령…….
영혼 조각의 무르를 찾기 위해.
켈빈
라라라…….
라라라…….
불쌍한 비극의 귀공자…….
……지은 죄도 잊고…….
……아름다운 세계를 여행하고 있어…….
라스티카
여기가 왕립 식물원.
희미한 불빛으론 잘 보이지 않지만
근사한 곳이네요.
여러 가지의 꽃과 풀 내음이 나요.
아……. 저건 뭘까?
클로에
기다려!
라스티카
앗……!
클로에
미, 미아가 되면 안 되니까.
혼자서 어딘가로 가지 말아 줘.
라스티카
괜찮아, 클로에.
어디에도 가지 않아. 너와 함께야.
클로에
어……, 어렸을 때처럼
달래지 말아줘.
지금은 내가 널 걱정하고 있으니까.
라스티카
그러네.
걱정해 줘서 고마워.
클로에
………….
만약 누군가가 갑자기 나타나
이상한 말을 하기 시작한다고 해서…….
라스티카
뭘까. 옛날이야기?
클로에
앞으로의 이야기.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다면
귀를 막고 있어도 괜찮아.
라스티카
누군가가 말을 걸어줬는데
귀를 막다니, 불친절하지 않으려나?
클로에
그렇긴 한데…….
샤일록
클로에.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세요.
클로에
……응…….
클로에는 걱정스러운 듯
주위를 경계하며
라스티카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날개 달린 마법사가
다시 나타나는 걸 경계하고 있는 거겠지.
정확하게는, 그가 라스티카에게
그의 신부 이야기를 해버리는 것을.
나도 이상한 긴장을 기억하고 있다.
무서운 마물이 덮쳤을 때나,
사람들 앞에서 말할 때와도 달라.
소중한 사람이 앞으로
상처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
그런 줄 알면서도
멀리 둘 수가 없다.
그런 두려움.
라스티카의 일을
내가 결정해 버릴 수는 없어.
신부 찾기를 하지 말라고도,
진실을 모른 채 있으라고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정말 좋아하는 그를 상처 입히는
재액이 다가오고 있다면…….
어떤 식으로 지켜낼 수 있을까?
무의식 적으로 숨을 쉬는 게 힘들어진다.
나도 이러니까,
라스티카와 계속 함께 있던
클로에는 더욱 힘들겠지.
밤길을 헤매는 것처럼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아키라
(어라……?)
나는 고개를 들었다.
정신 차리니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
떨어져 버린 걸까?
그런 일이, 가능한 건가.
외길을 걷고 있었는데.
두근두근, 심장 소리가 빨라진다.
어둠 속에서 웅성거리는 잎과 굽이치는 가지가
무섭게 느껴진다.
두리번거리며 둘러봐도
나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큰 소리로
마법사의 이름을 부르려고 했다.
그 순간.
팔목을 꽉 잡힌다.
귀 뒤에서, 신사적인 목소리가 들렸다.
영혼 조각의 무르
여기 있습니다, 현자님.
아키라
…………!
뒤를 돌았다.
내 뒤에 있던 것은
서쪽 마법사 무르였다.
아니……. 무르의 영혼 조각.
그것이 〈거대한 재액〉의 영향으로
실체화된 것.
고양이 같은 영리한 눈동자를 가늘게 뜨고
그는 미소 지었다.
영혼 조각의 무르
두려워할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당신과 만날 날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사랑스러운, 나의 현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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