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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19장 감화자 1~5화 본문

마법사의 약속/메인 스토리

2부 19장 감화자 1~5화

삐까스 2023. 7. 3. 23:00

1화

비극도 희극도 함께

 

아키라

……인조 마법사……?

 

무르

네.

 

무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머리 위, 푸른 밤하늘에 별이 흘러간다.

 

질문을 거듭하려는 순간

그가 시선을 움직였다.

무언가를 발견하고, 입이 벌어진다.

 

자세히 보니 하얀 안개 같은 아지랑이가

식물원을 맴돌기 시작했다.

 

무르

아무래도 당신의 마법사가

출구를 찾은 것 같습니다.

 

아키라

아……샤일록 쪽이?

 

무르

네.

어떤 등장을 할지 기대되네요.

 

무르는 내 옆에 서서

서커스를 즐기는 관객 같은

대사를 했다.

 

서쪽 마법사의 등장은 이랬다.

 

개운하게 눈이 뜨일 듯한

청량한 향기를 풍기며

하얀 안개가 자욱하게 나무들 사이를 감돈다.

 

흰 안개가 낀 공기는

반짝반짝 작은 빛을 발하며

선명하게 도배되는 듯했다.

 

별안간 정면에 있는

둥글고 큰 나무줄기에서

비쩍비쩍 긴 다리가 자라난다.

 

다음으로 파이프를 잡은 손이나

새장을 든 손이.

마지막으로 바느질 상자를 안은 팔.

 

풍경이 비치는 물의 벽에서

빠져나오듯

서쪽 마법사들은 나타났다.

 

서늘한 눈매를 추켜올리며

샤일록이 묻는다.

 

샤일록

현자님, 무사하신가요?

 

아키라

네.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클로에

다행이다! 같이 걷고 있다가

갑자기 현자님이 나무로 변해서

말라가고 있었거든!

 

라스티카

환혹에 걸렸다는 걸

깨달은 건 그 다음이었어요.

 

무르

내가 알아챘어! 잘했어?

 

천진난만하게 웃는 무르를 바라보며

영혼 조각의 무르는 농담처럼

내게 귓속말을 한다.

 

무르

그는 유능합니다.

역시 제 본체답네요.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가,

나는 표정을 굳혔다.

 

샤일록이 영혼 조각의 무르를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늘게 째진 눈동자로 무시무시하게 위협받으며

영혼의 무르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무르

안녕.

 

샤일록

………….

 

무르

기술로 따지자면 연기는 속임수.

그런데 내 속임수를

네 파이프 연기가 풀어버렸어.

 

훌륭하네.

 

샤일록

마음에도 없는 칭찬은 그만두세요.

당신이 여기 있는 줄 알면서도

멀뚱하게 현자님을 사로잡혔죠.

 

비웃는 게 낫겠어요.

빈정거리는 것보다 신랄한 찬사를 던지다니,

지독한 사람.

 

샤일록은 분한 듯이

눈썹을 구부리고 있었다.

 

제멋대로인 것처럼 보여도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니

나를 걱정해 준 걸지도 모른다.

 

영혼 조각의 무르는 눈을 깜빡이곤

부드럽게 뺨을 느슨히 풀었다.

 

고개를 기울이며 웃는다.

그는 매우 즐거워 보였다.

 

무르

가끔 네가 연하인 걸 자각해.

으레 기분이 좋아지지.

 

샤일록

입 다무세요.

무르, 보라색 조각을 찾으세요.

그건 당신 거예요.

 

무르

내?

 

무르

내 거?

 

샤일록

당신은 영혼 조각의 일부.

당신을 제 무르에게 먹일 겁니다.

무르를 되돌리기 위해…….

 

무르

무르라니 어느 쪽?

나, 먹히는 거야?

 

무르

내가 네 것일지도 몰라.

어쩌면 다람쥐의…….

 

샤일록

동시에 말하지 마세요.

 

무르

말씀하시길.

 

무르

말씀하시길!

 

무르

고마워. 그럼…….

 

한 가지 제안이 있어.

현자님도 들어주겠습니까?

 

아키라

네, 네.

 

무르

친애하는 서쪽 마법사들.

너희도.

 

라스티카

기꺼이. 무르 하트 님.

저는 라스티카 페르치라고 합니다.

 

클로에

나는 클로에 콜린즈.

무르랑은 이미 친구야!

그래서 뭔가 이상한 느낌…….

 

망설이는 클로에에게

영혼 조각의 무르는 익살을 부리며

한쪽 눈을 감아 보였다.

 

무르

금방 익숙해질 거야.

잘 부탁해.

라스티카, 클로에.

 

라스티카와 클로에는 미소 지었다.

오늘 만난 영혼 조각의 무르를

둘 다 좋아하는 것 같았다.

 

샤일록만이

아직 경계를 풀지 못한 채

마도구 파이프를 겨누고 있다.

 

내가 영혼 조각의 무르에게

완전히 안심하고 있는 탓일지도

모르지만…….

 

여유 없이 팽팽하고

따끔따끔한 샤일록은

어딘가 사랑스러워 보였다.

 

샤일록

제안이란 건 뭐죠?

 

무르

너는 영혼 조각을 모아서

무르를 되돌리려 하고 있어.

 

나를 거기 있는 무르에게 내어주고

하나로 만들 생각인 거지.

 

샤일록

그럼요.

 

무르

하나로!

 

무르

나는 자유를 빼앗긴

가엾은 영혼 조각…….

네 계획을 거부할 방법은 없어.

 

하지만 잠깐의 시간을 주지 않겠어?

거기 있는 무르와 하나가 되기 전에

세계를 보고 싶어.

 

아키라

세계?

 

무르

네, 현자님.

 

지금의 세계에는 어떻게

식물이 분포하고 있는지

이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습니다.

 

무르와 동화되어도

부추길 수 있겠지만

제 감상은 아닐지도 모르죠.

 

그때의 저는

식물에 눈을 돌리지 않을지도 몰라요.

아무튼 무르는 흥미 대상이 많죠.

 

정신없이 시선을 움직여

쉴 새 없이 머리를 굴리고 있으니까요.

 

부디, 현자님.

당신의 여행에 동행하게

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영혼 조각의 무르는

연기로 보일 정도로

큰절을 올렸다.

 

내가 입을 여는 것보다 빠르게

클로에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클로에

우리랑 같이

가준다는 거야?

 

무르

그래.

 

라스티카

굉장해!

무르는 세기의 천재예요.

그 본체와 영혼 조각이 동행자로.

 

믿음직스럽기 그지없지 않나요,

현자님.

 

라스티카가 말한 대로다.

기억과 지식이 산산조각

나버렸지만, 무르는 대천재다.

 

영혼 조각을 무르에게 먹이지 않고

함께 동행해 달라고 하면

의지할만한 지식인이 둘이 된다.

 

아키라

그렇네요.

저는 찬성이에요.

샤일록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샤일록

저는 반대예요.

 

무르

이런.

 

무르는 미소 지었다.

샤일록은 완강한 반발을

그에게 보내는 것이 아니었다.

 

두려움과 경계와 배려.

다양한 감정을 흔들며

신중하게 위험한 친구를 살피고 있다.

 

샤일록

당신은 현자님에게 있어

총명한 조언자, 최선의 인도자가

될 수도 있죠.

 

하지만 경우에 따라선

파멸로의 안내인이 될 수도 있을 거예요.

 

샤일록은

똑바로 나를 바라보았다.

 

샤일록

현자님. 북쪽의 쌍둥이…….

스노우 님과 화이트 님의 몸에 일어난

비극을 알고 계시겠죠.

 

천지가 갈라져도

떨어지는 일이 없을 것 같았던,

영원한 밀월[각주:1]을 살던 그들.

 

그들이 서로를 죽이게 된 것은

무르의 사소한 말이 계기였습니다.

 

그 이야기는 나도 알고 있다.

늘 함께했던 스노우와 화이트 쌍둥이.

 

그런 그들을 본 무르가

일찍이 스노우에게 물었다고 한다.

 

고독을 알고 싶지는 않은가?

 

스노우는 고독을 원했고

화이트는 그가 떠나기를 거부해

이윽고 서로를 죽이게 되었다.

 

그리고

스노우 혼자만이 살아남아

화이트는 유령이 되었다.

 

나는 불안해서 무르를 엿보았다.

무르는 변함없이 미소 짓고 있다.

 

그 태도는 도도해 보이기까지 했다.

 

샤일록

오해가 없도록 말씀드리지만,

무르는 결코 타인의 파멸을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흥미를 향해 안을 들여다보고

순수한 지적 호기심으로 파헤쳐

분석하려고 해요.

 

선의도 악의도 없습니다.

그런 성질인 거죠.

 

흉기와 같은 그것이

현자님에게 일심으로 향했을 때

비극이 일어나는가, 희극이 일어나는가…….

 

무르

둘 다 일어나겠지.

친구가 되는 거니까.

 

아키라

……친구…….

 

무르

네.

 

호기심과 흥미를 가지고

대화를 거듭한다면

그것은 친구 아닌가요?

 

그 말에 나는

처음 만났던 무르를 떠올렸다.

 

당신과 친구가 되고 싶어.

 

살짝 마음속이 흔들린다.

여러 광경이 생각나

많은 감정들이 밀려왔다.

 

낯선 것뿐인 신기한 세계.

이 세계에 살면서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친구가 되고 싶어.

그렇게 말해주는 사람의 마음에

가능한 한, 성실하게 응해 나가고 싶다.

 

나는 무르에게 파헤쳐질지도 몰라.

 

하지만 나도

무르를 파헤칠지도 몰라.

 

무르의 말대로 친구가 되는 거니까.

비극도 희극도 함께 체험한다.

 

마법사들과 그래왔던 것처럼.

 

아키라

……알겠습니다.

 

샤일록

현자님…….

 

아키라

샤일록.

걱정해 주셔서 감사해요.

 

이 세계에서 당신이나 모두가

저를 받아들여준 것처럼

저도 이 무르를 받아들이고 싶어요.

 

샤일록에게 그렇게 답하고

나는 무르를 마주 보았다.

 

아키라

함께 가 주시겠어요?

 

무르

기꺼이.

 

그럼 그 나무 구멍에 있는

무르의 영혼 조각을 주워

휴대해 주시겠나요?

 

실체화할 수 있게 되었지만,

자신의 의사대로 이동할 수는

없습니다.

 

나는 들은 대로

나무 구멍을 찾았다.

 

썩어가는 잎이나

나무 열매 안쪽에서 빛나고 있는

보라색 사파이어 조각을 발견한다.

 

아키라

이건가요?

 

무르

네. 주머니나 어딘가

떨어뜨리지 않을 것 같은 곳에

넣어주세요.

 

아키라

아, 알겠어요.

어디에 꿰매놓을까…….

 

클로에

내가 나중에 해줄게.

그럼 이 무르는

현자님과 계속 함께 있는 거야?

 

사크 짱처럼?

 

내 어깻죽지에 타고 있는

검은 고양이를 닮은 사역마를 가리키며

클로에는 물었다.

 

무르

그렇군요.

저도 휴대된다는 자각을 가지고

휴대하기 좋은 사이즈가 될까요?

 

즉, 그 사역마와

비슷한 크기가 되어

어깨에 멈추겠습니다.

 

라스티카

그건 좋은 생각이네요.

이쪽 무르와 구별도 잘 될 테고.

어때, 무르?

 

라스티카는 무르를 돌아보았다.

영혼이 부서진 고양이처럼

순진한 쪽의 무르다.

 

큰 뿌리에 쪼그리고 앉아선

무르는 가만히

샤일록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무르

………….

 

샤일록은 눈을 내리깔고

무언가 생각에 잠긴 눈치였다.

 

이윽고 무르의 시선을 알아차려

입가에 미소를 짓는다.

 

샤일록

왜 그래요, 무르.

 

무르

샤일록은 나랑

저쪽의 나, 어느 쪽이 좋아?

 

샤일록은 눈을 크게 떴다.

 

말을 잃고 무의식 중에

마도구 파이프를 떨어뜨린다.

 

쪼그려 앉은 무르의 발 밑으로

샤일록의 파이프가 굴러간다.

 

아름다운 은세공이

달빛을 튕겨내며 빛난다.

 

달이 아니라 샤일록을 올려다보며

무르가 토라진 것처럼 입을 굽힌다.

 

무르

어느 쪽이 좋아?

오늘 밤은 조각 안 주는 거야?

 

순간 샤일록은 달보다 창백해졌다.

 

무르는 개의치 않고

주인에게 다가가는 고양이처럼

어리광 부리는 몸짓으로 그의 한쪽 다리를 잡았다.

 

파이프를 집어 들고

칭찬을 받기 위해 웃다가

샤일록을 올려다본다.

 

샤일록은 비틀거렸다.

 

영혼 조각의 무르가 아연실색한다.

 

무르

샤일록, 너…….

이런 자아를 나에게 만들었구나.

 

그 어조는 감탄스럽기도 하고,

재미있어하기도 했다.

 

변덕스러운 무르답게

밤바람과 같은 홀가분함.

 

그에 비해

부인하는 샤일록의 목소리는

밤의 어둠을 가르는 비명 같았다.

 

샤일록

아니에요! 저는…….

……이런 걸 원한 게…….

 

무르

파이프 필요 없어?

가져가버릴 거야.

숨겨버린다!

 

가늘고 부드러운 나무에 휘감기는

섬뜩한 담쟁이덩굴처럼 웅크린 무르가

샤일록의 팔에 손을 뻗는다.

 

샤일록은

파이프를 받지 못했다.

이마와 뺨을 누르고 고민하고 있다.

 

이마에 걸린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하얀 도자기를 가르는 균열처럼

슬프고 아름다웠다.

 

무르

있지, 샤일록…….

 

샤일록

……안 돼요, 무르.

더 이상 제게 말 걸지 마세요.

 

샤일록은 무르의 어깨에 손을 얹고

떼어내듯 밀어냈다.

 

 

 

2화

그저, 다시 한번

 

무르가 깜짝 놀란다.

왜 혼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아이 같은 얼굴이다.

 

영혼이 부서진 날부터

무르는 샤일록에게 보살핌 받으며

그와 함께 살아왔다.

 

샤일록

이제부터…….

필요 이상 관여하지 말아 주세요.

 

무르

어~?

 

샤일록

쓸데없는 걸 제게서 얻지 마세요.

당신으로 돌아가지 못할 겁니다.

 

무르

하지만, 그치만, 그래도…….

 

샤일록

……윽. 당신을 마음대로

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어…….

 

……그저, 다시 한번…….

 

그 이상은 말하지 않았다.

쉰 숨소리가 애틋하게 흔들린다.

 

영혼 조각의 무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샤일록과 그를 올려다 보는 무르를

보고 있다.

 

그의 눈에는 어떤 식으로 보이는 걸까.

비극으로 보일까, 희극으로 보일까.

 

그는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쏟아지는 달빛을 받으면서

영리한 눈동자를 가늘게 뜬다.

 

사랑하는 달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영혼 조각의 무르는 말했다.

 

무르

뭐, 그렇게

심각해질 필요는 없어.

 

쌓는 걸 실패했다면

다시 한번 허물어버리면 돼.

 

달에 가까워지면 영혼이 부서진다.

결과가 판명된 사건이니

재현하는 건 쉽겠지?

 

무르는 돌아서서

샤일록에게 웃음을 터뜨렸다.

 

나름대로의 위로로도,

농담으로도 들렸다.

하지만 신랄한 비아냥일지도 모른다.

 

샤일록

………….

 

샤일록은 무시무시한,

칼을 내리치는 듯한 눈빛으로

무르를 노려보았다.

 

이렇게 화를 내는

샤일록은 처음 봤다.

무서웠지만 나도 모르게 넋을 잃고 보았다.

 

불타오르는 듯한, 생생한 감정이

엿보이는 샤일록은 드물다.

 

확실히, 그로선

고심하여 친구의 영혼 조각을 수집하고 있던 걸

당사자는 장난스럽게 대해진 것이다.

 

화를 낼만 하겠지.

 

영혼 조각의 무르도 미소를 지우고

정색했다.

항복을 나타내듯이 두 손을 든다.

 

무르

별로 좋은 아이디어는 아니었어.

 

시큰둥한 대답에

이번에는 샤일록이 노골적으로

낙담했다.

 

샤일록

무르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아요.

당신은 조각 중에서도 기묘하네요.

 

무르

어떤 식으로?

 

샤일록은 얼굴을 돌렸다.

말하고 싶지 않다는 듯이 작게 중얼거린다.

 

샤일록

……상냥해.

 

샤일록의 말에

나도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아키라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왠지 모르게, 이런, 호의라고 할까

애정이 느껴진달까…….

 

클로에

맞아! 왠지

분위기가 정말 부드러운

느낌이 들어…….

 

라스티카

우호적인 느낌이 나.

지금까지의 무르 조각들도

그들 나름대로 우호적이었지만.

 

영혼 조각의 무르는 등을 폈다.

점잖은 몸짓으로 모자챙을 들어 올린다.

 

무르

감격스럽네.

많은 사람들과 만났지만

상냥하다는 말을 들은 적은 별로…….

 

샤일록

별로?

 

무르

거의 없었거든.

 

샤일록

그렇겠죠.

 

무르

나는? 나는 상냥해?

 

샤일록

………….

 

무르

물론이지. 자신을 가져.

 

그때, 우리 머리 위에

새가 날아들었다.

 

비틀비틀 불안정하게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가서는

몇 번이고 선회해서 돌아온다.

 

클로에

저 새…….

그레고리 아니야?

 

라스티카

정말이네. 이 식물원을

찾고 있는 걸지도 몰라.

새는 밤에 눈이 잘 안 보이니까.

 

말하자마자 라스티카는

검지를 품위 있게 물고

휘파람을 불었다.

 

새소리를 닮은 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러자 하늘을 나는 새가

이쪽으로 내려왔다.

 

그가 헤매지 않도록

나는 큰 소리를 냈다.

 

아키라

그레고리! 그레고리!

 

그레고리

현자님……. 현자님!

 

하늘을 날고 있던 건

역시 그레고리였다.

 

극채색의 아름다운 날개가 흙으로 가득하고

상처 입어 엉망진창이 되어있다.

 

아키라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건가요?

그레고리…….

 

그레고리

……으, 릴리아나한테 죽었어!

 

아키라

네……!?

 

그레고리

릴리아나는 릴리아나가 아니야!

누군가가 그인 척하고 있어!

아니면 조종당하고 있어요!

 

현자님, 제발 도와주세요!

새 모습으론 아무것도 못 해…….

 

그저, 한 번이라도 좋아…….

내가 사랑한 릴리아나를

만나고 싶어……!

 

샤일록이 눈꺼풀을 내리깔았다.

 

밤바람의 행방을 찾듯이

라스티카가 시선을 옮긴다.

 

그 시선 끝에 있는 건

빠진 그레고리의 깃털이다.

 

둥실둥실 바람을 타고 춤춘다.

 

라스티카

그저, 한 번만 더…….

 

클로에

……라스티카……?

 

나는 그레고리의 흙을 털어내고

품속에 그 몸을 끌어안았다.

 

애절하게, 마음이 찢어질 만큼

누군가와 만나고 싶다고 바란다.

 

만약 이 세계를

떠나는 날이 온다면, 그때

나도 그런 생각을 하게 될까.

 

그저, 한 번만 더 만나고 싶어.

 

그 사람을 만나고 싶어.

 

아키라

……괜찮아요, 그레고리.

중간에 버리고 가지 않아요.

 

당신과 릴리아나 씨가

웃으며 만나는 모습을

저도 보고 싶으니까.

 

그레고리

현자님…….

 

그레고리의 눈동자가 젖어서

별빛에 반사된다.

 

그레고리의 말로는

이렇게 늦은 밤인데도 상관 않고

릴리아나 공주는 떠났다고 한다.

 

행선지는 서쪽 나라의 왕궁.

 

우리는 코르테제 성으로 돌아가

아침을 기다렸다가 출발하기로 했다.

 

수다스러운 서쪽 마법사들인데

신기하게도 다들 조용했다.

 

가슴 주머니에 무르의 영혼 조각을 넣었다.

 

그러자 영혼 조각의 무르는

손바닥 정도의 크기가 되어

내 가슴 주머니 속에  쏙 들어갔다.

 

무르

실례.

같은 인물이 둘 있으면

눈에 띌 테니까요.

 

그레고리

뭐야? 또 이 주변의

거주자가 늘었어?

 

사크리피키움

………….

 

가슴 주머니에 영혼 조각인 무르.

오른쪽 어깨에 사크 짱. 왼쪽 어깨에 그레고리.

상반신 주변의 밀도가 높아졌다.

 

그레고리

아무튼 잘 부탁해.

코르테제 성에서 일하는 그레고리야.

 

무르

무르 하트야.

지금은 구직 중이라고 할까.

 

내 턱 앞에서 악수가 오간다.

사크 짱도 살며시 참가해서

귀여웠다.

 

코르테제 성으로 돌아가기 전,

갑자기 클로에가 내게 말을 걸었다.

 

클로에

저기, 현자님…….

나, 조금만 여기에 남아서

켈빈을 찾아도 될까?

 

켈빈은

식물원에서 만난 마법사다.

 

아무도 모르는 라스티카의 과거를

알고 있는 눈치였다.

 

라스티카의 과거를 마주할

결의를 한 클로에의 눈동자에는

강한 빛이 머물고 있다.

 

클로에

오늘 밤 만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제대로 찾고 싶어.

자신을 위해서도.

 

아키라

그렇다면

저희도 함께 남을게요.

 

샤일록

그래요, 클로에.

사양하지 마세요.

 

클로에

아니, 괜찮아.

현자님도 모두도 피곤할 테고,

이 근처라면 안전할 것 같으니까…….

 

라스티카

그럼 내가 같이 남을게.

 

라스티카가 미소 지었다.

클로에의 선명한 보라색 눈동자가

그를 올려다본다.

 

라스티카

클로에가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는 거지?

 

클로에

응.

 

라스티카

켈빈 씨라고 했나?

어떤 사람이야?

 

클로에는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순간 망설임을 띄우면서도

제대로 라스티카를 다시 바라본다.

 

클로에

옛날의 라스티카를 아는 사람.

 

라스티카

옛날의 나?

 

클로에

응…….

라스티카가 잊어버린

과거를 아는 사람.

 

라스티카

………….

 

클로에

있지, 나…….

라스티카의 과거가 알고 싶어.

 

그러니까 켈빈과 이야기하고 싶어.

그걸 위해 오늘 밤 남아서 찾고 싶은 거야.

 

그래도 괜찮다면, 어울려줘.

 

밤바람이 불자 꽃향기가 났다.

 

클로에가 손가락 끝을 움켜쥐고

무의식적으로 비비고 있다.

 

기묘한 긴장감이 돈다.

 

누구나 숨을 죽이고

잔잔한 라스티카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그의 미소가

사라질 것 같은 예감이

무서워서.

 

라스티카

물론, 상관없어.

 

고개를 갸웃거리며 라스티카는 웃었다.

클로에는 안심한 듯

작은 숨을 내쉰다.

 

하지만 라스티카는 말을 이었다.

 

라스티카

하지만 왜

옛날의 내가 알고 싶은 거야?

 

클로에

왜냐니…….

그런 건 당연하잖아.

 

클로에의 목소리가 약하게 흔들린다.

도둑으로 의심받은 아이처럼

상처받고 당황하고 있다.

 

라스티카

어째서?

 

클로에

그야……. 그야,

라스티카는 어린 날 알고 있잖아.

나도 알고 싶어.

 

라스티카

아아, 그런가. 그렇구나.

 

클로에

알고 싶어. 뭐가 나쁜 거야?

 

이번엔 라스티카가

놀랄 차례였다.

 

클로에의 눈동자에

눈물이 맺혔기 때문이다.

 

클로에

……뭐가 나빠?

같이 여행해온 스승님에 대해

잘 안다는 듯이 이야기하고 싶어.

 

라스티카에 대해

전부 알고 있다고…….

안심하고 보고 싶어.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언제까지 함께 있을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읏, 행복한 시간이,

끝나지 않고 지낼 수 있을지…….

 

오열하며 클로에는 고개를 숙였다.

손등으로 눈 주변을 닦고 나서

노려보듯 식물원을 바라본다.

 

클로에

……으, 정말…….

여기서 우는 거 두 번째야.

이 장소, 싫어질 것 같아.

 

무르

그건 슬픈데.

 

무르

불꽃놀이 볼래? 기운 날까?

 

라스티카는 몸을 굽혀

클로에를 바라본다.

 

조금은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건 내 소망이나

희망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라스티카에게 있어

어린 시절부터 함께 여행해 온

클로에가 특별했으면 좋겠어.

 

라스티카

미안해, 클로에.

나는 옛날의 나를 몰라도

곤란하지 않았으니까…….

 

너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어.

불안하게 해 버렸구나.

 

클로에는 눈썹을 아래로 깔았다.

젖어있지만 솔직한 눈빛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클로에

왜 그렇게 상냥한 거야?

그런 말을 들으면, 나도

실은 곤란하지 않아.

 

라스티카

그럼 어째서?

지금의 나를 아는 것만으론

부족한 거야?

 

클로에

……으, 몰라…….

모르겠어…….

……나, 억지 부리고 있어……?

 

알고 싶을 뿐인데…….

 

영혼 조각의 무르가 웃음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무르

탐욕이네.

 

고양이 같은 무르가 눈동자를 반짝인다.

 

무르

당연한 욕구야!

 

샤일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근심스러운 등에 달빛이 내린다.

 

누군가에 대해, 이 세계에 대해

완벽하게 알 수 있다면.

 

이 마음은 흔들리지 않고

편안한 나날을 보낼 수 있는 걸까.

 

천리안을 가진 신처럼.

 

 

 

3화

물의 달, 거울 꽃

 

피가로

……윽, 하…….

하아……, ……하…….

 

새하얀 어둠 속에서

내 숨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급격하게 체온을 빼앗기고,

사고하는 힘마저 쇠약해져 간다.

 

방한하기에는 불충분한

얇은 천으로 된 옷을 끌어안고,

있는 힘껏 스스로를 감싼다.

 

쏟아지는 눈을 망연히 올려다본다.

 

이것이 사람인가.

 

얼마나 취약하고 덧없는 생물인지.

 

기분에 따라 날씨를 바꿔버리는

마신 같은 남자도 있는데.

 

만약 이 날씨가

오즈의 기분이 나빠서 일어난 것이라면.

 

지금이라면 필사적으로 비위를 맞추겠다.

 

도와주고 싶은 사람이 있어.

 

더 이상 때를 놓치는 건 싫어.

 

 

미스라

《아르시무》

 

브래들리

《아도노포텐숨》!

 

그림 속의 스노우

해치웠나!?

 

그림 속의 화이트

…………!

방향을 틀었네!

모습을 감출 생각인 게야!

 

녀석들을 놓치지 말거라!

 

미스라

당연하죠.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브래들리

기다려!

내 사냥감은 남겨둬!

 

그림 속의 스노우

실웨스여!

우릴 데려가는 게다!

 

실웨스

하, 하지만……!

 

브래들리

너흰 여기서 기다려.

실웨스, 저 앞엔 뭐가 있지?

 

실웨스

몰라…….

하지만 이 건물 아래로 향하는

계단이라면 아마…….

 

브래들리

아마, 뭐야?

 

실웨스

지하수로로 이어져 있을 거야.

 

브래들리

지하수로인가.

스노우, 화이트,

너희들은 여기서 이 녀석과 기다려.

 

그림 속의 스노우

으음…….

답답하지만, 알겠다.

 

그림 속의 화이트

브래들리여.

그 자들에게 북쪽 마법사의 힘을

똑똑히 보여주거라.

 

브래들리

말할 것도 없지.

 

(하지만 그 녀석들은

정말 생물인 건가……?)

 

(생물이 아니라면

대체 뭐야……)

 

 

……여기가 지하수로인가…….

응……?

 

미스라

………….

 

브래들리

미스라. 그 녀석들은?

 

미스라

말 걸지 마세요.

지금 기척을 찾고 있습니다.

 

만나자마자 공격했더니

요격도 안 하고 자취를 감췄거든요.

흥. 나약한 녀석이에요.

 

브래들리

그 녀석들은 대체 뭐야?

망령인가? 사역마?

 

미스라

말 걸지 말라고 했잖아요.

 

브래들리

혼잣말이거든.

 

미스라

하? 거짓말이죠?

지금 저한테 말 걸었잖아요?

무조건 그렇죠?

 

브래들리

알겠어, 알겠어!

산만하게 굴지 마! 집중해!

 

미스라

………….

 

《아르시무》

 

브래들리

위험하잖아!

먼저 찾았다고 말해!

 

미스라

찾았어요.

 

브래들리

…………!

공간이 요동친다……!

 

미스라

어디론가 이동할 생각이네요.

……큭, 그렇겐 안 둬요!

 

《아르시무》

 

브래들리

…………!

 

 

………….

 

……북쪽 나라인가…….

아까 막 떠난 참이었는데.

 

………….

 

흥……. 나오셨구만.

 

놀아주마.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몸속이 타오를 듯이 뜨겁다.

전신이 격통으로 삐걱거리고 있다.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아.

눈을 뜨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피할 수 없는 고통에 휩싸이면서,

어딘가 잔잔한 마음도 들었다.

 

어둠 속으로 끌어들이는 듯한

엄청난 졸음이 엄습한다.

 

파우스트

(시노…….

시노는 도망쳤나…….

네로와 히스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

 

 

???

과연…….

물의 달, 거울의 꽃이네.

 

구할 수 없는 것의 비유야.

넌 내성[각주:2]을 거울에서 찾고 있지만,

해석과 사고를 넓히면 응용할 수 있어.

 

반사, 반조[각주:3]…….

있는 그대로를 되받아쳐.

 

하하…….

결벽하고 고집이 센 너에게

어울리는 술식인 것 같네.

 

 

레녹스

파우스트 님……!

 

파우스트

………….

 

번쩍 눈을 떴다.

 

어둑어둑한 어둠 속에서

환상을 보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낯익은 장신의 체구가

지하수로를 뚫고

가로막는 유령을 향해 다가간다.

 

레녹스다.

 

레녹스

《포세타오 · 메유바》

 

그는 빗자루를 꺼내나 싶더니

좁은 지하수로 속을 능숙하게 뛰었다.

 

통나무로 대문을 파괴하듯

기세를 올려 자신의 빗자루를

지하수로의 유령에 부딪치려 한다.

 

무리다. 그 공격은 닿지 않아.

장대한 팔과 갈고리 발톱으로 베일 거야.

 

바로 판단했다.

하지만 레녹스의 목적을 깨닫는다.

 

파우스트

(아직 승기가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피가 돌기 시작했다.

레녹스의 모습을 보고 반사적으로

몸이 움직이고 있을 뿐일지도 모른다.

 

그는 편리한 환상일지도 모른다.

생각을 멈추고 비틀거리며 반신을 일으켰다.

 

파우스트

(이게 마지막이다. 이제 마력이 없어)

 

(마도구도 없다. 마지막 도박이야)

 

(이 마술이 성공한 건

과거에 한 번뿐이지만……)

 

……윽, ……!

 

레녹스

으악……!

 

갈고리 발톱으로 베어진

레녹스가 땅에 내동댕이쳐진다.

 

그는 바로 일어나

불사의 병사처럼 도전했다.

 

파우스트

……, 하아……!

 

흐르는 피를 손바닥으로 모아

발밑 수로에 흩뿌린다.

 

파우스트

《사틸크나드 · 무르크리드》

 

눈꺼풀을 감고 주문을 중얼거리자

수로에 흩어진 핏자국은

마법진이 되어 빛났다.

 

공중에 손을 댄다.

 

손바닥 너머에는

거대한 유령을 향해

발을 내딛는 레녹스가 보인다.

 

아무것도 전하지 않았는데

레녹스는 내 의도를

모두 헤아린 눈치였다.

 

유령을 향해

도발하는 듯한 움직임을 반복하며

상처투성이가 되면서 공격을 계속해 나간다.

 

레녹스

……윽, 큭……!

 

《포세타오 · 메유바》!

 

지하수로를 흐르는 물이

내 손바닥 앞으로 한 방울, 한 방울

빨려 들어오듯 모여들었다.

 

강한 바람이 풀고

나를 중심으로 선풍이 불어 간다.

 

이윽고 물방울은 거미줄처럼

복잡한 무늬를 그리며

마도구와 흡사한 타원을 형성해 나갔다.

 

레녹스를 처리하기 위해

유령이 갈비뼈를 삐걱거리며

푸른빛을 모은다.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파우스트

……윽, 레노……!

 

체력 소모가 심해

엎드려 있으라는 소리까지는 지를 수 없었다.

 

하지만 짐작한 듯이

레녹스가 몸을 수로에 내던진다.

 

유령에게서 창백한 섬광이 뿜어져 나왔다.

 

무섭고 눈부신 푸른 섬광이

사정없이 내 몸을 관통하려 한다.

 

그 찰나, 주문을 외웠다.

 

파우스트

《사틸크나드 · 무르크리드》

 

지하수로에서 모은 물방울이

마도구의 거울 같은 거울면으로 변한다.

 

눈을 태우는 듯한 하얀빛이 넘쳐나고

엄청난 충격이 나를 덮쳤다.

 

하지만 유령이 쏟아낸

창백한 섬광은

내 몸을 관통하지 않았다.

 

즉석 마도구…….

지하수로의 물로 만든 거울에

빨려 들어간다.

 

즉석에서, 거기다

서쪽 땅에 흐르는 물로

만들어내서 그런지 거울은 불안정했다.

 

거대하게 부풀어 오르거나

손바닥 정도로 축소되기를 반복하면서

어떻게든 유령의 공격을 흡수해 나간다.

 

심한 충격 속에서

나는 몇 번인가 의식을 잃었다.

서 있는 게 신기할 정도다.

 

유령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섬광이 다하여

공격이 끝난다.

 

잠시 주위가 정적으로 가득 찼다.

 

직후…….

 

물로 만든 거울에서 푸른 섬광이 뿜어져 나온다.

 

레녹스

…………!

 

경면 반사…….

 

처절한 충동에 사로잡혀

배에서 떠다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발을 딛고

유령의 쏘아 올린 푸른 섬광을

똑바로 들이받았다.

 

당황한 듯 삐걱거리며

지하수로의 유령이 하얀빛에 싸여 간다.

 

그 윤곽이 무너져가는 것과 동시에

내 시야는 어둠에 가려지고

소리는 멀어졌다.

 

마지막으로 들린 건 레녹스의 목소리다.

 

레녹스

파우스트 님……!

 

자신이 말을 하고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 채 입을 움직였다.

 

아찔한 격통 속에서

등에 감긴 팔을 느꼈다.

 

차가운 몸에 닿은 체온이 기분 좋다.

 

큰 손바닥을 움켜쥔다.

 

파우스트

……시노를……부탁해…….

이 앞의……, 공간 왜곡…….

 

레녹스가 뭔가 외치고 있다.

 

그런데, 이제 들리지 않았다.

그게 무척 슬프다.

 

말해야만 하는 게,

잔뜩, 있었는데…….

 

 

 

4화

눈보라가 몰아치는 눈밭에서

 

시노

……윽, 히스……!

어디 있어!? 히스……!

 

이 근처에서 기척이 느껴져…….

죽은 건 아닐 거야.

……히스……!

 

히스클리프

…….……

 

시노

히스……!

 

……읏, 사람으로 돌아왔어…….

상처 투성이잖아…….

 

기다려, 지금 마법으로 따뜻하게 하고

입을 것도…….

 

《맛차 · 스디파스》!

 

히스클리프

……윽, ……으…….

 

시노

……괜찮아!

내가 반드시 구해줄게!

 

네로, 다른 녀석들은 어디 있지?

사람을 모아서 파우스트를 도우러…….

 

야윈 청년

…….……

 

시노

……!

괜찮아!?

 

야윈 청년

……아…….

 

……도……, ……도와줘…….

 

시노

…………!?

 

……설마…….

 

…………큭!

 

(여기까지 따라왔어!

아니면 새로운 녀석인가!?)

 

(나 혼자선 쓰러뜨릴 수 없어!

네로는 어딨지!? 히스……)

 

(진정해, 진정해…….

히스를 지켜줄 수 있는 녀석은 나밖에 없어!)

 

(히스를 지키는 게 내 역할이야.

약속했어, 지켜준다고)

 

(여기서 쓰러지면

파우스트를 볼 면목이 없잖아!)

 

……좋아! 상대해 주지!

 

히스클리프

……윽, ……아…….

 

……시노…….

 

시노

으아아아앗……!

 

《맛차 · 스디파스》!

 

히스클리프

…………!

 

시노……!

 

미스라

《아르시무》

 

히스클리프

…………!

미스라……!

 

시노

……큭, 미스라…….

 

미스라

뭔가요?

너덜너덜하잖아요.

 

시노

…….

 

……살았어…….

지금이라면 당신 구두 끝에 키스해도 좋아.

 

히스클리프

무슨…….

 

미스라

이상한 짓은 하지 말아 주세요.

거기서 비켜요.

 

죄송하지만,

그 녀석은 제 먹이입니다.

 

이번에야말로 제 해골로 얼음 조각으로 만들고

먼지로 만들겠습니다.

 

시노

조심해……!

늑골 부분에서 섬광을 쏴!

 

미스라

문제없어요.

 

정면으로 가서 이겨드리죠.

 

《아르시무》

 

시노

…………!

 

야윈 청년

……윽, ……으으…….

 

키가 작은 신사

……, 허억……!

추워! 얼어 죽을 것 같아……!!

당신, 괜찮아!?

 

야윈 청년

……큭, 네.

다행이다, 무사했군요.

 

……!

……저 빨간 머리의 청년은……!?

 

키가 작은 신사

모르겠어…….

저 정체 모를 뼈 괴물과

정면으로 싸우다니…….

 

야윈 청년

대단해…….

해골에서 뿜어져 나온 블리자드가

저 녀석의 섬광을 부수고 있어……!

 

혹시 저 빨간 머리의 청년은

전설의 마법사…….

 

시노

미스라다.

당신, 목숨을 건졌네.

 

야윈 청년

미스라…….

북쪽 마법사 미스라!?

 

키가 작은 청년

미, 미스라라고……!?

 

시노

그래. 미스라가 이겨.

……이길 수 있지!?

 

미스라

당연하죠.

아까는 일부러

당해준 것뿐이에요.

 

시노

당한 건가?

네가!?

 

미스라

안 당했어요.

하지만 귀찮네요, 이거.

 

현자의 마법사 반절은

이 녀석이 죽일 거예요.

 

시노

.…………

 

히스클리프

……오토마타…….

 

……윽, 기계장치의 마법사…….

노바가…….

 

시노

움직이지 마, 히스!

상처가 심해.

 

히스클리프

시노……윽,

저 녀석은 노바의 부하야.

노바를 만났어.

 

네로는?

파우스트 선생님은 어디 있어?

 

시노

……큭, 미스라!

서둘러 줘!

당신이 해줘야 하는 게 있어!

 

미스라

절 사역하려는 건가요?

 

시노

파우스트와 네로가 죽어 가고 있어!

 

히스클리프

……!?

……그런……!?

 

미스라

…….……

 

알겠습니다. 서두르죠.

 

《아르시무》

 

 

브래들리

………….

 

나는 장총을 겨누면서

바보 같이 큰 인형을 멀리서 관찰했다.

 

브래들리

3, 2, 1…….

 

손가락을 튕겨 조금 전 설원에 설치한

마법진을 기동시킨다.

 

도적단에 있을 때 자주 양동으로 썼던 방법이다.

무인 마법진이 작은 눈보라를 만들어

무수한 얼음 조각을 날리게 한다.

 

바보 같이 큰 인형은

훅 사라져 날아온 공격을 피했다.

거기까지는 예상 대로였다.

 

한 박자 뒤, 조금 떨어진 곳에

바보 같이 큰 인형이 출현한다.

 

마법진 쪽을 돌아보며

바보 같이 큰 인형은 푸른빛을 모으기 시작한다.

 

브래들리

1, 2, 3…….

 

섬광을 발하기까지의 시간을 카운트한다.

4까지 빛을 모으고, 5에 쏜다.

 

나는 눈을 부릅뜨고

인형이 내뿜는 섬광의 비거리를 관찰했다.

엄지와 검지로 거리를 잰다.

 

브래들리

……중거리인 건가.

내 장총이 유효 사거리가 더 길어.

 

즉, 원거리에서의 싸움이라면

내가 유리하다.

 

조준을 정하고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바람의 세기를 계산하면서 손가락을 당긴다.

 

브래들리

《아도노포텐숨》

 

총알은 머리에 명중했다.

 

대미지는 받았는지

움찔하고 머리를 숙인다.

 

하지만 미스라가 말했던 것처럼

후드 안에 반응을 느낄만한 것은 없었다.

 

삐걱삐걱 몸을 기울이면서

저 녀석은 기묘한 자세로 균형을 잡았다.

 

바로 원래 자세로 돌아가서

몸 째로 이쪽을 돌아본다.

 

엄청난 속도로 날아왔다.

 

브래들리

……큭, 들켰나.

 

총을 겨눈 채 상대를 관찰했다.

약점이 머리가 아니라면

역시 늑골 안인가?

 

거기에는 마나석 같은 것이 보였다.

늑골을 겨냥해

다시 한번 방아쇠를 당긴다.

 

늑골 중심에 명중한다.

하지만 피해를 입은 기색은 없었다.

 

기세를 늦추지 않고 직진해 온다.

감정을 갖지 않는, 죽은 병사 같다.

 

브래들리

…….

 

다시 방아쇠를 당긴다.

아직 전진이 멈추지 않았다.

한 방 더.

 

두 발, 세 발 총을 쏘며

끈질긴 견고함에 섬뜩해졌다.

 

브래들리

(이런 게

서쪽 나라를 서성거렸다니……)

 

(생물이 아니야.

인형이나 도구라면

누가, 무엇을 위해 만든 거지?)

 

(마법관의 젊은 마법사들은

쉽게 숨통을 끊어버릴 거다)

 

슬슬

저 놈의 섬광 사거리 안에 들어간다.

나는 숨을 깊이 내쉬었다.

 

신경을 집중시키면서 마력을 담아

방아쇠에 손가락을 건다.

 

브래들리

(다음 한 발로 끝내주마)

 

《아도노포텐숨》

 

마력을 띤 총알이

회전하면서 바보 같이 큰 인형의

늑골 안쪽으로 파고든다.

 

그제야 움직임을 멈췄다.

삐걱삐걱, 뼈를 삐걱이며

눈부신 푸른빛에 싸여 간다.

 

급격히 부풀어 오른다고 생각한 순간,

그놈은 티끌처럼 산산조각이 났다.

 

브래들리

…….

고생시키긴.

 

잔해를 확인하려고

발길을 돌리려 한 그때,

이 부근에서 공간이 일그러지는 것을 느껴졌다.

 

브래들리

(미스라인가? 아니……)

 

(……네로?)

 

희미하게 네로의 낌새를 느꼈다.

 

하지만 네로치고는 연약한,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은 덧없는 기색이다.

 

브래들리

(잠복해 있는 건가?

혹시 죽을 뻔했나?)

 

(설마, 그 녀석이……)

 

웃어넘길 수도 없었다.

안 좋은 예감이 든다.

초조함을 느끼고 빗자루에 뛰어올랐다.

 

하얀 미궁 같은 눈보라의 설원을

의지하지 않는 기색을 향해

달려간다.

 

 

 

5화

그 생명의 소재는

 

네로

……읏, ……!

 

《아도노디스 · 옴니스》

 

곱슬머리의 여성

……윽, 추위가 약해졌어…….

고마워…….

 

깡마른 노인

살았다……. 미안하구나…….

우리는 결계를 치지 못해서…….

 

네로

됐어……. ……큭…….

 

곱슬머리의 여성

잠깐, 어디 가는 거야!?

 

네로

……당신들, 거기 있어…….

내가 가야만…….

 

곱슬머리의 여성

무리야, 그런 몸으로……!

 

네로

……윽, 이 틈에, 설원을…….

……결계가, 사라지면…….

 

아침을 기다렸다가, 도망쳐.

 

 

……, 헉…….

 

(앞이……. 안 보여……)

 

《아도노디스……》

 

《옴니스》

 

………….

 

(……날아갈 힘도, 안 남아있는 건가……)

 

(무리하면, 죽나? 이거……)

 

(……그렇다고 해도, 순서가 틀리잖아……)

 

(나 같은 것보다,

선생이나 시노 쪽이……)

 

(살아남아야 해)

 

……큭, ……하…….

 

…………윽!

 

……으, ……으…….

 

(……야, 브래드……)

 

(당신, 내가,

모르는 장소에서 돌이 된다면,

어떻게 할 거야……)

 

(당신이 갈 수 없는 장소에서,

돌이 되어버리면,

조의를 표할 수 없겠네……)

 

(당신을 위해 돌이 되어서,

당신에게 먹히는 게

최고의 명예라고 생각했어)

 

(다른 녀석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제 와서 이러네)

 

(내가 배신한 거잖아.

이 새하얀 대지도, 너도……)

 

(힘들고, 괴로워서,

버렸어……)

 

………….

 

《아도노디스……》

 

《옴니스》!

 

 

레녹스

……, 헉……!

 

(시노 일행은 어디지?

공간의 일그러짐이라는 건……)

 

(서두르지 않으면

파우스트 님의 생명이 위험해.

피가로 님은 어디에……)

 

(…………!
저건 파우스트 님의
마도구인 거울……!)

(여기가 공간의 일그러짐…….
여기부터 시노 일행은 탈출한 건가)

파우스트
……윽, ……으…….

부탁해……. 시노 일행을…….

레녹스
알겠습니다.

(헛소리인가…….
대답은 들리지 않았겠지)

(……마법이 풀려서, 다리가……)

(심한 화상이야…….
역시 숨기고 계셨군)

(이분은 자기 자신을
결코 용서할 생각이 없으신 거야)

(……반드시 구해야 해.
무슨 짓을 해서라도 구해야 해)

(그러기 위해 계속 찾았어)

(구국의 영웅이 아니어도 좋아.
인간이나 알렉 님을 원망한 채로도……)

(이번에야말로, 행복해지기 위해서)

《포세타오 · 메유바》


…………!

……여긴, 북쪽 나라……?

헉……. 헉…….
체온을 앗아가…….
파우스트 님…….

………….
……마법사들의 기색…….

피가로 님의 기색이, 희미하게…….


미틸
생각보다 빨리 동쪽 탑까지 왔네요!
엘리베이터로 서쪽 나라에 도착하면
어디로 갈까요?

루틸
그러게…….
중앙 나라의 마법사는
풍요의 거리에 갈 예정이었지.

마법관에 밤까지 돌아오지 않았으니까,
여관에서 묵고 있는 걸지도 몰라.

봐, 전에 우리도 묵은 적이 있는
콕 로빈 씨가 준비해 주신…….

미틸
기억하고 있어요!
리케도 몇 번 머물렀다고 했어요.
오늘 밤도 거기 있을지도…….

루틸
그럼 거길 목표로 해보자!

미틸
네!


루틸
서쪽 나라에 도착했어!
서둘러서 오즈 님을 찾자!

미틸
네!

루틸
미틸, 형님의 빗자루로 와!
스피드를 낼 테니까!

미틸
엇!? 지금요!?

루틸
응!
가까이 갈게!

미틸
하지만 피가로 선생님이
날고 있을 때 빗자루에서 이동하면
위험하다고…….

루틸
괜찮아!
피가로 선생님도 넘어오시는 걸!

미틸
그……, 그렇네요!
알겠어요! 해볼게요!

루틸
이리 와!

미틸
하나, 둘……!

……앗, 됐다……!

루틸
해냈네!
제대로 꽉 잡으렴!

미틸
네! 알겠…….
……으, 와아아앗─……!

형님, 너무 빨라요……!!


브래들리
하…….

하얀 숨을 뱉으며
사나운 한밤중의 눈밭을 둘러본다.

그리운 감각이었다.
그때는 많은 부하들이 있었고,
옆에는 당연하다는 듯이 네로가 있었다.

네로는 별난 녀석이었지.

건방지고 넉살 좋고,
배짱이 두둑한데도
겁 많고 소심한 것처럼 굴었다.

진심으로 경멸하는 듯
질렸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나에게 심취해 신봉하고 있었다.

어떤 네로든 재밌고, 아늑했다.

에바의 말 대로야.
네로는 잃어버린 가족과 같았다.

지긋지긋해 보이는 얼굴로,
어쩔 수 없는 바보를 보는 눈빛으로
이것저것 제멋대로 말하는 게 좋았다.

나는 밑바닥에서 기어오른 남자다.
밑바닥의 경치도 알고 있다.
무턱대고 기어 다닌 적도 있지.

힘을 더해갈 때마다
경의 받고, 두려움 받았다.
그거, 정말 기분 좋았는데.

내 뒤통수를 치고
욕할 놈들은
전부 없어졌어.

네로 정도다.
나보다 먼저 죽지 않고, 나에게 죽임 당하지 않고
옆에 계속 서있던 것은.

웃으며 부담 없이 대해질 때마다
두령의 책임에서 해방돼
자유를 되찾는 기분이 들었다.

네로가 있으면 어떻게든 된다.
뒤는 저 녀석한테 맡기고,
나는 어디든 달려 나갈 수 있어.

뭐가 꼬인 걸까.
너무 오래 알고 지낸 걸까.

나를 배신하고
내 보물을 훔쳐간다면,
아직 괜찮아.

저 녀석은 나를 배신하고, 전부 버렸다.

마치 가치가 없다는 듯이.

브래들리
………….

반쯤 눈에 파묻힐 뻔한 네로를 발견했다.
바보처럼 얇은 옷으로 누워 있다.

작은 틈이라 확실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창백한 피부색을 하고 있다.

목덜미를 만져 맥을 잰다.
몸은 꽁꽁 얼었고 심장박동도 약했다.
선혈에 젖은 옷이 얼어서 달라붙어 있다.

솔직히, 화가 났다.
이 녀석을 이렇게 만들어도 되는 건
나뿐이잖아.

네로의 가슴팍에 손을 얹고
익숙하지 않은 타인을 위한 치유 마법을 건다.

네로가 등을 젖혔다.

네로
……윽, …….

브래들리
네로, 정신이 들었냐.

내 목소리가 들렸는지는 모르겠다.
네로는 눈을 감은 채 입을 움직인다.

희미한 목소리로, 힘없이 말한다.

네로
……동쪽……녀석들을……,
구해…….

브래들리
동쪽 녀석들이 있는 건가? 알겠어.
넌 누구에게 당했지?

네로의 몸에서 힘이 빠졌다.

동료의 위기를 알리고
역할을 다했다는 듯이
축 늘어진다.

그 순간부터
생명의 힘 같은 게
순식간에 빠져나가는 걸 깨달았다.

브래들리
네로. 어이, 네로…….

네로는 더 움직이지 않았다.

쿵, 하고 심장이 울렸다.
무의식적으로 초조해져 호흡이 빨라지며
네로의 가슴팍에 손바닥을 얹는다.

손바닥이 옅게 빛나고,
그 빛이 네로의 몸에 침투해 간다.

하지만 피가 너무 많이 흘렀는지
네로의 쇠약은 심각했다.

이대로는 죽는다.
옛날처럼 마력을 쏟아부으려 했다.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거절당하는 것처럼
힘이 전달되지 않아 호응이 없었다.

브래들리
네로.

이름을 불렀다.
눈보라 소리가 심해져 시야가 가려진다.

네로의 반응은 없었다.

브래들리
네로.

다시 한번 부르자
희미하게 반응이 있었다.
눈꺼풀이 떨리고 있다.

동료를 잃는 것에는 익숙했다.
네로의 죽음도, 자신의 죽음도
각오하고 있었다.

네로가 눈꺼풀을 떴다.
안도하며 다시 한번 마력을 쏟아붓는다.

하지만 또다시 실패했다.
옛날 같으면 실패할 리가 없었다.

이 녀석이 나를 믿고
살려는 의지가 있다면.

브래들리
…………쯧.

나는 힘차게 네로를 노려보았다.
매도할 생각이었지만,
뜬 눈을 보고 할 말을 잃는다.

금빛 눈동자느 공허했다.
눈꺼풀을 뜨고 있을 뿐, 네로에게 의식은 없다.

살 의지가 없다.

그렇게 보였다.

돌이켜보면, 만났을 때부터
네로는 계속 사는 걸 힘들어했다.

건조한 눈을 하고는 스스로도,
남도, 세상도 믿지 않았다.

도둑질의 재능이 넘치는데
남이 슬퍼하는 것에 약했다.

누구보다 나를 신봉하던 주제에
나를 배신하고 감옥에 가두었다.

나는 네로의 뺨을 쳤다.
의식을 되찾기 위해 소리를 지른다.

브래들리
네로! 마력을 주마!
네가 직접 받아!

……쯧, 일어나!
네놈이 안내하지 않으면
저주상 쪽도 못 도와주잖아!

네로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화가 나서 견딜 수 없었다.
뺨이나 팔을 마구 쓰다듬고
멱살을 잡는다.

목구멍에서 숨이 떨렸다.

허공의 싸락눈을 바라보는 금빛 눈동자를
죽일 듯이 노려본다.

브래들리
……너, 멋대로 뭘 하는 거야.
편하게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

이 배신자가……!
네놈 때문에 몇 명이나 죽었다고 생각해!?

널 죽이는 건 나야!
뒤처리 하기 전에 허락 없이 죽지 말라고!

네 목숨은 내 거다!
알겠냐!

네로……!

몰아치는 거센 바람이 잠시 멈췄다.

공허하게 열려 있던 눈동자가
천천히, 어색하게 움직인다.

내 얼굴을 보고, 이름을 부른다.

네로
……읏, ……브래…….

브래들리
마력을 붓는다. 받아들여.
저항하지 말고.

네로는 몇 번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가슴팍에 손바닥을 얹고
마력을 직접 쏟아붓는다.

손바닥의 희미한 빛이
천천히 네로의 몸으로 스며들어 가는
반응이 있다.

졸린 듯이 눈꺼풀을 가늘게 내리깔며
네로가 몸을 뒤로 젖힌다.

도중에 팔이 잡혔다.
팔을 잡는 손에는 약간의 힘이 깃들어 있었다.

네로
……큭, ……이제 됐어…….

브래들리
움직이지 마. 죽을 뻔했어.

네로
부탁해, 파우스트를…….
……윽, 시노 쪽은……?

브래들리
나한테 맡겨. 장소는…….

물을 것도 없었다.
희미하게 동쪽의 어린애들의 낌새가 느껴진다.
미스라의 기척도 가까운 것 같다.

네로의 팔을 메고 부축한다.
고통에 얼굴을 찡그리며
네로는 뭔가 말하고 싶은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네로
……읏, 브래드…….
아까…….

브래들리
나중에 얘기해.

나는 네로를 데리고 이동했다.

 

 

  1. 밀월; 신혼기; 허니문; 또, 친밀한 관계. [본문으로]
  2. 內省. 자신을 돌이켜 살펴봄. 자신의 심리 상태나 정신의 움직임을 내면적으로 관찰하는 일. [본문으로]
  3. 反照. 돌이켜 살펴봄.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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