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치즈 돈가스
2부 20장 이끌 각오 1~5화 본문
1화
없어서는 안 될 것
에바
잘 들어. 베인 가의 도령.
브래들리
브래들리다.
슬슬 기억해. 에바.
내 이름을 기억해서 손해는 안 볼 거다.
에바
후후, 건방진 아이…….
뭐 됐어.
잘 들어, 브래들리.
브래들리
그래.
에바
우리는 북쪽 마법사.
강인하고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자.
강하게, 자유롭게 살기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 될 것을
가져서는 안 돼.
브래들리
없어서는 안 될 것?
에바
그래.
브래들리
마도구도인가?
에바
그래.
내 몸의 일부처럼 사랑하면서
항상 버릴 수 있는 각오를 다져.
나도, 너도, 고고한 왕.
아무리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과
만나도.
자신 이외에게 영혼을 빼앗기고 포로가 되지 마.
브래들리
포로?
둘도 없는 게
이 세상에 있는 것만으로 죄수나 마찬가지인 건가?
에바
이 북쪽 땅에서
생명과 같은 가치를 가진 것을 손에 넣으면
그건 우리를 연결하는 사슬이 돼.
오즈를 봐.
어떤 것에도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어떤 것에도 신경 쓰지 않아.
이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영혼.
그렇기 때문에 무적인 거야.
브래들리
에바는?
에바
뭘.
브래들리
아무리 마음에 드는 것이어도
버릴 수 있나?
에바
아무렴.
내 마음 따위에
내가 휘둘릴까 보냐.
무르
사랑스러운 너…….
널 위해서라면
이 영혼의 모양을 바꿔도 상관없어.
네가 너로 있는다면,
나는 내가 아니어도 상관없어.
샤일록
………….
사랑은 현자도 우자로 만든다
하지만…….
당신 정도의 사람이 저속하고
긍지 없는 말씀을 하는군요.
자신의 영혼을 바꾸어 버리면,
그것은 애모도 연모도 아닙니다.
그냥 종속 아닌가요?
무르
종속이어도 좋아.
사랑하는 것에 속할 수 있다니,
행복하잖아.
나는 불변의 영혼 같은 건 필요 없어.
있는 그대로의 영혼을 지키는 것은
멋진 일이야.
불굴의 것은 아름다우니.
하지만 변화를 필요치 않는다면,
이 광대한 은하에 나도 너도
혼자로 충분해.
마찰도 연마도 필요 없다면
충돌하고, 붕괴하고, 폭발하고, 탄생하는
수억 개의 별들이 빛날 필요는 없지.
나에게 상처를 주고 깨닫게 해 줬으면 좋겠어.
모르는 것을 보여주고, 불안하게 하며
겁을 주고 경희 시켜주길 바라.
이 아름다운 세계를 사랑하고 있어.
손이 닿지 않는, 저 빛을…….
늘 생각하고 있어.
샤일록
………….
굉장히 유감스러운 이야기지만…….
당신만큼 영혼이 아름다운 사람을
저는 알지 못해요.
무르
아하하.
그건 정말 안타까운 이야기네.
샤일록
……그러니…….
영혼을 바꾼다는 말은 하지 말아요…….
라스티카
오늘은 무척 즐거운 하루였습니다.
당신에게도 그랬다면 좋겠는데요.
자라.
???
오늘 일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해요.
상냥한 아리아 덕분에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생겼어요…….
라스티카
앞으로도
추억을 늘려가도록 해요.
사랑하는 아리아의 언니라면
당신은 제 누님과 다름없습니다.
???
………….
라스티카
게다가 우리는 같은 마법사예요.
저는 감춰지지도 않고
사파이어 성에서 자유롭게 자랐습니다.
자라.
당신도 언젠가 꼭, 자유롭게…….
???
라스티카 님.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얼굴을 보여줘…….
더 가까이서…….
이 눈꺼풀에 박혀 사라지지 않도록.
라스티카
부디 얼마든지.
하지만 눈꺼풀에 새겨 넣지 않아도
당신을 만나러 갈게요.
몇 번이라도, 당신이 원하는 한.
???
……감사합니다.
하지만, 더 이상…….
상냥한 말을 하지 말아 주세요.
저는 날이 갈수록 죄가 깊어집니다.
당신을 몰랐다면…….
이 가슴에 소원의 불이 지펴지지 않았다면
저는…….
아리아도, 이 세계도 사랑할 수 있었는데.
라스티카
자라?
???
……아름다운 눈동자…….
깨끗한 세상밖에 모르는
상냥한 눈빛…….
태어난 그날부터
동화 같은 행복으로 가득 차
누구에게나 사랑받은 사람…….
상처받은 적도 없고,
두려워한 적도 없으며
더러운 것을 본 적도 없어…….
라스티카 님의 아름다운 영혼은
어떤 세계에 있든
결코 변하지 않겠지요.
라스티카
자라.
당신도 사랑받고, 축복받고 있어요.
당신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저도, 아리아도.
???
………….
……저도 사랑하고 있어요…….
……라스티카 님…….
오웬
………….
카인
오웬…….
히죽히죽 웃지도 않고
오웬은 휙 고개를 돌렸다.
나는 오웬을 노려봤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아서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으니까.
〈거대한 재액〉의 상처 때문에
아서가 보이지 않는 게 아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꺼림칙함 때문에
직시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자신은 변명이 하고 싶어지는 듯한
일을 하고 있다.
뭘 하고 있는 거지.
아서
괜찮아. 일행이 있어.
아, 저기다.
아서가 이쪽을 돌아본다.
오웬은 고개를 돌린 채
모르는 체하며 팔짱을 끼고 있었다.
힐끗, 하고 오웬이 이쪽을 살핀다.
나는 사양하지 않고 그를 계속 노려보았다.
아서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어.
안절부절못하고 자기혐오를 하는 만큼
사정없이 그를 미워했다.
하지만, 순간
오웬의 눈동자가 미덥지 않게 흔들렸다.
죄책감을 느껴 나는 당황했다.
작은 어린아이의 오웬…….
기묘한 상처의 상태가 됐나 하고 착각한다.
그러나 오웬은 바로
짐승 같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되받아쳤다.
카인
(저 얼굴, 진짜여도 하는 건가)
아서
알겠어. 고마워.
오웬. 너도 와 줘.
아서는 오웬의 한쪽 팔을 잡고
함께 이쪽으로 왔다.
나는 당황했다.
오웬도 당황하고 있다.
각오를 하고 나는 아서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경멸도 낙담도 하지 않았다.
연습복을 입고 있으면서
밝고 푸른 눈동자로 눈을 깜빡이고 있다.
그 모습을 본 순간,
나는 험악한 얼굴로 그를 매도했다.
카인
아티,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여긴 상급사관만 들어올 수 있는 곳이다!
일개 병사가, 분수를 알아라!
나는 가볍게 아서를 밀어내고
가슴팍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아서의 신분을 알리는 것이
여기선 가장 위험하다.
그를 안전하게 퇴거시키기 위해서였다.
아서는 당황하고 있었지만
주위의 상황을 살피고 내게 맞추었다.
아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오웬
사과할 거 없어, 아티.
자, 거기 앉아.
기사님, 그만해.
오웬은 억지로
내 옆에 아서를 앉혔다.
말동무를 해주고 있던
여성이나 장교들도 휙 자리를 옮긴다.
나, 아서, 오웬,
그리고 나와 오웬의 옆에 여성들이
늘어선 줄이 됐다.
여성
한 잔 드세요.
이쪽 분도.
나와 오웬은 잔을 내밀며
아서의 몸 너머로 서로를 노려보았다.
목소리를 낮춰 따진다.
카인
무슨 생각이야.
장난치면 가만 안 둘 거야.
오웬
흥. 놀고 있는 건 그쪽이잖아.
각오를 하고 있다면 왕자님 앞에서도
똑같은 일을 할 수 있겠지.
여성
왕자님?
오웬의 말실수에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오웬은 다리를 다시 꼬고
옆의 여성에게 미소 짓는다.
오웬
내 얘기야.
난 지옥견 나라의 왕자거든.
널 물어서 죽여버릴 거야.
오웬은 협박할 생각이었겠지만
술자리여서인지 여성은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볼을 붉히고 목을 움츠린다.
여성
어머, 무서워라.
하지만 먹혀도 좋아.
오웬
바보 아냐?
기사님이랑 잘 맞네.
그 남자도 개의 먹이가 된 적이 있어.
카인
너 말이야…….
반박하려고 했을 때,
아서가 몸을 일으켜 나를 봤다.
시야가 그의 얼굴로 가득 차 주춤거린다.
아서
할 얘기가 있어.
아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카인 님.
카인
뭐지, 아티.
여기서 듣지 않으면 안 되는 이야기인가?
벌써 밤이 늦었다. 아이는 쉬는 편이 좋아.
아서
아이?
아서는 한쪽 눈썹을 치켜들었다.
그는 조금, 화가 난 것 같았다.
아서
카인 님의 명예에 관해
중요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카인 님은 충의로운 분이시지만,
그것 때문에 마음을 배신하는 일…….
아서의 뺨에 뒤에서 손끝이 뻗어왔다.
오웬이 아서의 얼굴을 돌아본다.
아서의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였다.
내 모습을 살피며
귓속말을 주고받는 모습이, 친밀해 보여 당황스럽다.
안 좋은 걸
불어놓고 있는 게 아닐까.
진정되지 않는 마음으로 안절부절못했다.
아서
……알겠어.
약간의 당혹감을 느끼며
아서는 고개를 끄덕였고, 오웬에게서 몸을 뗐다.
이번에는 내게 다가와서 소파 등에 팔을 두른다.
아서의 입술이 내 귀에 다가온다.
그의 머리와 피부에서는
아무리 숨겨도 숨길 수 없는
비싼 향료의 향이 났다.
밀담의 기미에 조금 긴장된다.
아서의 어깨너머로
턱을 괴는 오웬이 보였다.
작은 목소리로 아서가 속삭였다.
아서
……기사로서의 영혼을
파는 일은 하지 말아 줘.
오웬에게서
어디까지 이야기를 들은 걸까.
진지하고 성실한 목소리에 가슴이 아팠다.
아서의 어깨를 끌어당기며
나도 귓가에 속삭인다.
카인
……오해입니다.
니콜라스의 정보를 입수하기 위해
서쪽 군인들을 회유하고 싶어.
너야말로 여기 있으면 위험해.
당장 떠나 주세요.
오즈와 리케라면 숙소에…….
힐끗 시선을 들고 나는 말문이 막혔다.
삼엄한 분위기로 몇 개의 구두 소리가
이쪽을 향해 온다.
규칙적이고 중후한 구두소리는
상관과 그를 따르는 장교들을 생각나게 했다.
담소를 나누던 주위의 분위기도
어딘가 긴장되어 있다.
조금 전 장교가 말했었던
바넷 장군일지도 모른다.
질
………….
서쪽 나라의 장군이라면
중앙 나라의 왕자 아서의
본모습을 알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카인
(긴장상태에 있는 이웃나라 왕자가
장교 클럽에 몰래 들어가거나 하면
어떤 소동이 벌어질지 몰라)
나는 순간적으로 아서를 끌어당겨
등을 만졌다.
아서
……무슨……!?
카인
무슨 일이지? 상태가 안 좋은가?
과음했나 보군. 어서 돌아가는 게 좋겠어.
오웬!
오웬
하?
카인
아티를 부탁한다.
숙소까지 데려다줘.
오웬이 이마에 핏대를 띄웠다.
오웬
왜 내가 기사님이 하는 말을
들어줘야 해?
아서도 울컥하며 고개를 들었다.
아서
내 이야기도 아직 끝나지 않았어.
어느 쪽도 말을 듣지 않는다.
나는 바넷 장군의 눈치를 살피며
한 손으로 책을 집어 들었다.
장군이 좋아한다는 통속소설이다.
책을 낭독하고 장군의 마음을 끈다,
라는 작전이었다.
카인
부탁이니 둘 다 어서 사라져 줘.
나는 이 책을 읽어야만 해.
아서
지금?
오웬
왜?
카인
장군이 좋아해.
좋아하는 것이 함께라면 흥이 나잖아?
아서
카인은 좋아하나?
카인
나는 아직 읽지 않았지만…….
아서
좋아하는 척을 해도
기쁘지는 않을 거야.
거짓말인 걸 알아챘을 땐 슬퍼.
아서의 말에
어머니가 생각나 마음이 흔들린다.
나는 쓰라린 마음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카인
……너도 오즈도 거짓말은 할 수 없잖아.
그렇다면 이건 내 몫이야.
솜씨 좋게 환심을 사들여 보일게.
아서
신용은 그런 것이 아니야.
거짓으로 이루어진 신용은
중요한 때에 터져버리고 말아.
전장에서 신용을 잃은 자에게
누가 목숨을 맡기겠어?
머리를 맞은 듯한 충격이 엄습했다.
아서의 말대로,
부실한 인물의 휘하에 사기는 떨어진다.
누구라도 정의와 긍지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싶어 한다.
애매모호하고, 안절부절못하는
썩어가는 권위나 다름없는 정의.
그것을 위해선 달리기조차 할 수 없다.
마치 그랑벨 성에 장식되어 있는
초대 국왕폐하의 초상화처럼
한결같이 숭고한 눈동자로 그는 고했다.
아서
카인은 나의 기사야.
간계를 부릴 필요는 없어.
내 마음은 휘청휘청 흔들렸다.
더럽혀지지 않은 아서의 생각에 보답하고 싶다.
하지만
아서의 생각을 배신하는 편이
그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니콜라스와 백발의 여자.
바다에 가라앉은 애덤스 섬의 연구.
지금은 포기하고 다른 방면에서 공격할 것인가?
내 명예는 상관없어.
도대체 어느 쪽이 진짜 충의지?
레노나 시노라면, 어떻게 할까?
2화
장군의 말을 듣고
나는 오웬을 훔쳐봤다.
오웬은 미간에 주름을 잡고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쉰다.
아서의 몸 너머로
쭉 내 목덜미를 끌어당긴다.
그리고 귓가에 속삭였다.
오웬의 목소리는 묘하게 높아졌다.
마치 수줍어하는 것처럼.
오웬
너 말이야…….
어떻게든 해달라고 한다면.
서쪽 나라의 장군이라든가를
내가 죽여줘도 돼.
나는 눈을 부릅떴다.
오웬은 인상을 찌푸리며
쑥스러움을 감추는 듯한
서투른 표정으로 휙 외면한다.
기분 나쁜 듯 앞머리를 만지고,
하지만 어딘가 득의양양한 듯이 오웬은 나를 쳐다본다.
오웬
오늘 밤뿐이야, 이런 거.
나는 창백해져서 고개를 흔들었다.
카인
절대 하지 마, 그런 거.
외교 문제가 돼.
오웬
……뭐?
오웬에게 있어선
민망할 정도의 선행일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훌륭한 암살이었다.
북쪽 마법사가 서쪽 나라의 장군을
중앙 나라 왕자 앞에서 죽인다니,
너무 복잡하고 까다롭다.
카인
쓸데없는 짓은 안 해도 되니까,
너는 아서를 데리고…….
오웬
쓸데없는 짓?
내가 도와주겠다는데
쓸데없는 짓이라고?
카인
마음은 고맙지만,
지금은 별로 네 힘은
도움이 되지 않아.
오웬이 마도구를 출현시켰다.
나는 천장을 올려다보고 나서
다시 한번 그를 설득하려고 한다.
카인
지금은 필요 없다고 했잖아?
오웬
널 돌로 만드는 거야.
누군가의 명령으로 내가 움직일 것 같아?
여성
지, 지금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갑자기 트렁크가…….
설마, 마법?
창백해지는 여성에게
오웬은 미소를 지으며 위협했다.
오웬
그래, 말했잖아.
너를 먹겠다고.
아서
그만둬, 오웬.
여성
……읏, 무섭지 않아!
마법사 같은 건.
여긴 마법 과학 병단 사람들이
잔뜩 있어!
다들, 이리로……!
카인
진정해 줘!
오웬, 트렁크를 닫아!
절대 덮개를 열지 마!
오웬
……나한테 명령하지 마!
아서
명령 따윈 하지 않아.
북쪽의 오웬을 따르게 할 수 있다고는
나도 카인도 생각 안 해.
아서는 오웬의 팔을 만졌다.
그리고 나에게 시선을 돌린다.
아서
카인에 대해서도야.
나는 바랄 뿐이고, 너를 거느리지는 않아.
마음을 따르게 할 수는 없으니까.
그 말은 애절하고, 기분 좋았다.
마음.
생각이 모든 것을 바꾸어 버린다.
그런데, 쉽게 쉽게 넘어가자.
이 생각으로 뭘 할 수 있을까.
질
무슨 일일까요.
나와 오웬은 동시에 자세를 갖췄다.
예기치 않게 둘이서 아서를 감싸는 형태가 된다.
상대대의 모습은 나에게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서 있으면 주위의 공기로 알 수 있다.
이 인물이 바넷 장군이다.
기분 좋게 취해서 느긋하게 있던
장교클럽의 공기가 조금 전부터 일변하고 있다.
나쁜 뜻이 아니다.
공포에 등을 돌리고 있는 게 아니야.
그의 앞에서 전사라는 것을,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떠올리고 있다.
그의 존재가 이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
서쪽 나라의 군인들은 자부심을 갖고
사기가 넘쳐났다.
바넷 장군의 얼굴을 보기도 전에
나는 압도당했다.
일상에서 이만큼 카리스마를
발휘하는 인물이 전장에서 어느 정도의
통솔력을 발휘할 것인가.
이웃나라의 군인으로서 겁이 난다.
카인
……소란을 피워 죄송합니다.
중앙 나라의 전직 기사, 카인이라고 합니다.
우호적으로 웃으며 나는 손을 내밀었다.
악수에 응해줄까.
걱정했던 것은 몇 초의 일이었다.
금방 큰 손바닥이 느껴진다.
그 순간, 눈앞에 유능해 보이는
장신의 청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교적이고 의지할 만한
이상적인 상관 같은 느낌의 남자다.
질
질 바넷이다.
그들은 네 친구들인가?
나는 긴장을 느끼며 두 사람을 소개했다.
카인
부하입니다.
아티에, 웬.
오웬
너, 마법사잖아.
오웬이 바넷 장군에게 말했다.
나는 순간 움찔했지만,
이유를 깨닫고 그에게 설명했다.
카인
무례하다, 웬.
입 조심해.
각하는 마법과학병단을 이끄는 분이다.
마나석을 소비한 기색이
마법사처럼 느껴진 거겠지.
오웬
마나석을……?
……얼마나 썼으면
이렇게 기색이 배는 거야.
혐오와 적의를 머금고
오웬이 옅은 미소를 짓는다.
바넷 장군은 움직이지 않았다.
아서를 바라보다가 착석을 재촉한다.
질
자. 앉게.
아서
감사합니다.
아서가 착석할 때까지
바넷 장군은 착석하지 않았다.
인사를 하고 떠나간 여성을 대신해
내 옆에 걸터앉는다.
여유 있는 그의 몸짓은 스마트했다.
그렇다고 위압감을 주는 것도 아니다.
군데군데 배려가 느껴진다.
질
중앙 나라의 전직 기사라고 했나.
카인
예.
장군은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
질
나는 서쪽 나라의 군대를
대륙 제일의 용사라고 자랑하지만,
중앙의 기사 앞에서는 목소리가 작아져.
중앙 나라의 기사들은
아무리 노기사여도, 젊은 기사 견습생이어도
두려워하지 않고 용감하지.
그들은 진정한 명예를 알고 있어.
눈앞의 승리에 탐닉하지 않는,
역사에 이름을 새기는 영웅들뿐이다.
너도 그중 한 사람이겠지.
만나서 반갑다.
카인
아…….
감사합니다.
과분한 말씀입니다.
아첨이겠지, 라고 생각하면서도
내 가슴은 감격으로 가득 찼다.
내가 동경했던 중앙의 기사들을,
그들의 훌륭함을 장군은 알고 있다.
아서도 눈동자를 반짝이고 있었다.
질
그건?
장군은 내 옆에 있는 책을 시선으로 가리켰다.
통속소설을 좋아한다는 말은 사실인 것 같다.
이것으로 겨우 본래의 목적을 완수할 수 있다.
나는 기운 넘치게 책을 집어 들었다.
카인
제가 좋아하는 통속소설입니다.
각하도 좋아하신다고 들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낭독하겠습니다.
장군에게 미소를 보낸 뒤
나는 뒤를 돌아 오웬에게 얼른 고했다.
카인
웬,
아티의 귀를 막고 있어 줘.
오웬
뭐? 왜?
카인
아이에게는 들려줄 수 없는
전개가 될 가능성이 있어.
아서
아까부터 어린애라고 하지만,
나는 이제 어린애가…….
어린아이가 아닙니다, 카인 님.
오웬
내가 들려줄게.
아티가 악몽을 꾸고
잠이 안 올 것 같은 이야기를 해줄게.
아서
어떤 무서운 이야기를 듣는다 해도
잠을 잘 수 없게 되거나 하진 않습니다.
어린아이가 아니라서요.
카인
무서운 이야기가 아니야.
무서운 이야기는 아닌 것 같은데…….
아까 소설의 첫머리를 읽었을 때
요염한 장면이 있었던 것 같다.
힐끗 장군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아까의 우호적인 태도가 거짓말인 것처럼
그는 살기를 띠고 있다.
카인
무……, 무슨 일 있으십니까,
각하…….
장군은 내 눈을 응시한 채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질
그 책은 좋게 말하면 번안물…….
나쁘게 말하면 비열한 개악 작품이다.
카인
앗……. 그…….
질
진짜는 영지 계승 분쟁에 휘말린
여주인과 하녀의 우정을 그린
성장담이며, 모험 활극.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인
네.
질
주인공인 그들이
행상인을 사랑하여 총애를 겨룬다
라는 말도 안 되는 내용으로 되어 있어.
이 책을 너는 좋아한다고 했지?
카인
네, 네.
질
솔직히 말해, 굉장히 슬프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어.
카인
기, 기다려줘!
미안해. 사실대로 말할게.
나는…….
질
현자의 마법사,
카인 나이트레이겠지.
그쪽도 같은 현자의 마법사,
북쪽 마법사 오웬.
그리고, 이분…….
이름을 입에 대진 않지.
장군은 아서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서는 숨을 한 모금 들이마시더니,
확실하게 고했다.
아서
나부터 이름을 대지.
중앙 나라의 왕자,
아서 그랑벨이다.
신분을 속여서 미안했네.
바넷 장군.
정정당당하게 나서는 그에게
장군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는 처음으로 동요하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핀 뒤 어깨를 움츠린다.
질
……대단히 죄송합니다만,
일단 못 들은 것으로.
당신의 정체를 알면
나는 무릎을 꿇어야 해.
그렇게 하면, 상당히, 눈에 띕니다.
아서
미안해. 신경 쓰게 했군.
바로 사과하는 아서에게 장군은 미소 지었다.
몸을 내밀고 목소리를 낮춘다.
질
……놀라지 마시고 들어주십시오.
우리나라의 요인이 급병으로 쓰러졌습니다.
순식간에 병세가 악화되어
이대로라면 오늘밤을 넘길 수 있을지도 모르는,
위태롭다는 말입니다.
같은 때에 존귀한 분의
잠복 미행이 있었다는 것이 알려지면
쓸데없는 의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신속하게
돌아가시길 바랍니다.
아서
서쪽 나라의 핵심인 분…….
질
더 이상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이해하셨습니까?
아서
알겠다……. 고마워.
하지만, 한 가지만 괜찮나?
질
하시지요.
아서
어째서 충고해 줬지?
질
하찮은 일로 이야기가 꼬여
제게 귀찮은 일이 닥치는 건
면죄하고 싶어서요.
장군은 주눅 들지 않고 웃었다.
거만한 태도이긴 하지만
아서를 바라보는 눈빛은 상냥하다.
질
당신은 젊고, 희망이 가슴에 있어.
부서져가는 세계에 살면서
세상은 아름답게 재생될 것이라고 믿지.
당신의 이름을 소리 높여 외치고
양국을 험악한 상태로 몰고 가기보다는
당신에게 은혜를 베풀고 싶어.
아서
감사하지, 바넷 장군.
질
질이라고 불러주십시오.
또, 이것은 조언이라 할 정도는
아닙니다만…….
급한 예정이 없다면
잠시 풍요의 거리에
머무르는 게 좋지 않을까 합니다.
카인
어째서?
질
멀지 않은 날 대관식이 열린다.
현자의 마법사들도 초대받겠지.
그 말로 분명히
병세가 악화되고 있는 서쪽 나라의 핵심 인물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서쪽 나라의 국왕이다.
우리는 엄청난 때에
서쪽 나라에 내방해 버린 것 같다.
질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돌아가는 길에는 시중을 들게 하죠.
장군은 가볍게 인사하고
우리 앞에서 떠나갔다.
나는 즉시 일어나서
그의 뒤를 따랐다.
그는 공정하게 대해 주었다.
거짓말을 한 죄책감 때문에
나는 무어라 말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카인
기다려줘.
질
뭐지?
카인
……거짓말을 해서 미안해.
아니, 죄송합니다.
장군은 어깨를 흔들며 웃었다.
모욕의 의미가 아니라는 것은
얼굴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질
정말 중앙의 기사다운 예절이군.
오히려 기분이 좋아.
어째서 나의 환심을 사려했지?
카인
어?
질
내 환심을 사기 위해
읽지도 않은 책을 읽었다는
녀석들은 싫을 정도로 만나고 있어.
카인
그건…….
정말 미안한 짓을 했어.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어.
질
그런 것 같아.
진심으로, 중앙 사람은 모술에 적합하지 않아.
니콜라스도 그랬지.
니콜라스의 이름에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카인
니콜라스를 기억하는 건가?
질
당연하지.
중앙 나라의 기사단장이었던 영웅이라고.
그런 걸물을 객장으로 삼아
부하로 맞아들이지 못했던
내 마음고생을 헤아려 줘.
장군은 투덜댄 뒤 나에게 미소 지었다.
질
네 이야기는 그에게서 들었다.
백 년에 한 명뿐인 인재라고.
너의 이야기를 하는 니콜라스는
매우 자랑스러워 보였어.
중앙 나라와 중앙의 기사를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느꼈다.
그의 일은 매우 유감이었어.
장군의 손바닥이 내 어깨에 닿는다.
치밀어 오르는 뜨거운 충동에 숨이 떨렸다.
악으로서 스러진, 과거의 동경했던 사람.
그를 기리는 말에 가슴이 떨린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타이르면서,
계속, 사실은 괴로웠다.
동경했던 공정한 기사를
몰아붙여 악인으로 만든 것이 나라면,
정말 나쁜 건 나였지 않나?
자신을 탓하는 소리 없는 목소리를
부정하듯이, 장군이 고개를 흔든다.
질
내가 불만인 건
니콜라스 정도의 무인을 몰아낸 뒤
네가 기사단을 이끌고 있지 않은 것이야.
너는 이런 장소에서
첩보활동을 흉내 낼 인물이 아니야.
사람에게는 적재적소가 있다.
서쪽 나라도 마법사에게는 차별적이지만,
하트 박사에게 경의를 갖고 왕궁으로 맞이하는
품이 넓은 면이 있지.
중앙 나라의 인사는 폐쇄적이야.
마법사와 나라를 세운 영웅왕 알렉의
너그러움은 지금의 중앙 나라엔 없다.
성실한 기사들을
부실한 자인 듯이 욕되게 하는 것은
중앙 나라의 제도와 관습이다.
네가 그런 얼굴을 할 필요는 없어.
검의 솜씨를 닦고, 그분의 버팀목이 되어라.
이국의 장군의 힘찬 말은
나에게 구원이자, 이정표였다.
어쩌면 달콤한 말로
회유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실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카인
감사합니다, 각하.
질
저분을 떠받치고
나쁜 습관은 바꾸는 게 좋아.
뭐, 혁명에 실패하면
망명하면 돼.
자네만 한 기사라면 극진히 맞이하지.
카인
나라를 버리진 않습니다.
저는 중앙의 기사니까.
장군은 환하게 웃었다.
질
그렇게 말할 줄 알았네.
카인
바넷 장군 각하.
서쪽 나라에서 살던 니콜라스에게
뭔가 이상한 기색은 없었습니까?
질
어째서 그런 걸 묻지?
카인
바다에 가라앉은 애덤스 섬에 대해
알아보고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바다에 관심 있던 사람이 아니었어.
다만 뭔가 남겨둔 것이 있다면
생각을 완수해주고 싶어서…….
질
과연. 중앙의 기사다운 우정이야.
중앙의 기사들은
이야기 속 등장인물 같아서 좋아해.
그래서, 니콜라스의 당시 모습 말이다만…….
그는 예의 바르고,
특히 나에게는 선을 그었다.
마음을 허락하지 않았던 것 같군.
카인
그렇습니까…….
질
다만 한 가지는 기억하고 있어.
내가 독서가인 것을 알았는지,
그가 이렇게 물어본 적이 있다.
서쪽의 옛이야기나 전승에
걷는 지옥에 대한 기술이 있느냐고.
카인
걷는 지옥……?
질
그래.
나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중앙 나라에는?
카인
저도 처음 들어봤습니다.
질
그런가.
미안하지만 그 정도군.
아서
걷는 지옥…….
나도 들어본 적이 없네.
오웬은?
오웬
글쎄.
아서
오웬의 가방 속은
지옥과 이어져 있어?
오웬
맞아.
들여다볼래? 왕자님.
카인
하지 마, 오웬.
오웬
흥.
기사님은 악당이 되질 못했네.
뭐, 시간문제겠지만.
그때를 기대하고 있을게.
카인
……윽, 사라졌어…….
나 참, 저 녀석은 정말……
아서
오웬은 카인을 걱정하고 있어.
카인
설마.
아서
그러니 나를 부른 거라고 생각해.
……내 착각인 걸까?
카인
착각이야.
그 녀석은 생각보다
싫은 녀석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확실히 싫은 녀석이야.
속지 않도록 해.
아서
그런가……?
카인
……걷는 지옥…….
하아…….
하룻밤 견뎌서 단서가 이것뿐인가.
아서
서쪽 나라의 장군도 만났어.
카인이 잠입해 준 덕분이야.
고마워, 카인.
카인
아서…….
아뇨, 이쪽이야말로.
3화
태양과 달에게 사랑받은 아이
릴리아나
………….
노인
……윽, 제발…….
제발, 부탁드립니다…….
결코 당신에 대해선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겠습니다…….
약속합니다……!
릴리아나
인간 아이가
약속을 지킨 적 따위 없어요.
노인
히익……!
사, 살려줘……!
누가! 누가……!
릴리아나
쓸데없는 저항은 그만두세요.
제게서 도망갈 수 있다는 건가요?
당신에겐
좋은 생각을 하게 해 주었겠죠.
노인
아앗……, 몸이…….
환자처럼 여위어 가.
……아아, 팔이 나뭇가지처럼…….
릴리아나
당신을 소임을 다 했어요.
편히 잠드시길.
노인
………….
릴리아나
……하아…….
이걸로 잘 됐어.
미안해, 알버트.
모처럼 그 분과 만나는데,
노인 모습으론 싫은 걸.
클로에
……자라…….
숨겨져 자란 마녀라니,
나처럼……?
켈빈
……너도 가족들에게 숨겨진 거야?
클로에
응…….
내가 마법사라는 걸 알게 되면
가족 모두가 미움받는다고…….
켈빈
흥. 미움받게 놔두면 돼.
신비한 힘을 싫어하는 녀석들 같은 거
어차피 지루한 놈들이야.
게다가
마법사는 미움받잖아.
의심받는 거야.
클로에
의심받아……?
켈빈
그래. 뭐가 없어졌을 때나
무언가 고장 났을 때.
행복한 누군가가 불행해졌을 때 말이야.
우리의 신비한 힘 때문이
아니냐고 의심받는 거야.
눈에 보이지 않는 걸
믿기는 힘드니까.
마찬가지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의심하기는 쉬운 거야.
호의라든가, 우정이라든가, 선의라든가.
클로에
……하지만…….
라스티카는 믿어줬어.
옛날에 말이야, 내가 바느질 일을 하고 있을 때
문득 자수 아이디어가 떠올랐어.
이거랑 이걸 조합하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던 대로 멋진 표현을 할 수 있었어.
켈빈
굉장하네!
너, 멋 잘 낼 것 같으니까.
클로에
에헤헤! 고마워…….
켈빈도 다정한 사람이구나.
……하지만 누나들은
내게 그런 자수를 할 수 있을 리가 없어,
누군가의 자수를 보고 훔쳤을 거라고 했어.
켈빈
너무하네. 열받아!
클로에
나는 익숙했으니까…….
그래도 말이지,
라스티카는 믿어줬어.
굉장해, 클로에라고 말 해줬어.
증거 같은 건 없는데 아무것도 의심하지 않고.
나는 겨우 처음으로
그 자수를 놓은 나를
그렇지, 대단하지? 라고 생각했어.
기쁘고 자랑스러웠어.
라스티카가 믿어줬으니까…….
켈빈
라스티카 님은 그래.
그는 아무것도 의심하지 않고
이 세상은 배려와 상냥함만으로
이루어진 줄 알아.
행복한 것이나 상냥한 것 밖에
라스티카 님은 몰랐기 때문이야.
클로에
……행복밖에 모르다니,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왠지 알 것 같기도…….
라스티카는
어떤 것도 나쁘게 말하지 않아.
좋은 부분을 찾는 걸 굉장히 잘해.
속거나 곤욕에 처해도
나쁜 말을 하지 않아.
어떻게
그런 식으로 지낼 수 있는 걸까 하고
쭉 신기했었어.
하지만…….
행복한 것이나 상냥한 것 밖에 모른 채
살아간다는 게 가능해……?
켈빈
가능해.
어느 시대의, 어느 집에서만.
클로에
어느 시대의 어느 집…….
켈빈
사파이어 성이
풍요의 거리에 있었던 옛 페르치 가문이야.
라스티카 님은 페르치 가가
가장 번영하던 시기에 태어나셨어.
클로에
페르치 가라니?
켈빈
서쪽 나라에서 가장 찬란한
영화를 자랑했던 대귀족이야.
서쪽 나라의 왕가보다 힘을 가졌고
대륙 전역의 귀족과 상인들이
페르치 가문과 장사를 하고 싶어 했어.
온 세상의 부를 모아
사파이어 성을 짓고
매일 밤 만찬을 열었거든.
전쟁이라든가, 세금이라든가, 정책이라든가
나라의 중요한 이야기도 왕궁이 아니라
사파이어 성의 회식 중에 정해졌어.
클로에
왕들보다 훌륭했다는 거야?
켈빈
장사에서 성공해 힘을 가졌던 거야.
대륙을 오가는 통운사업에 투자해
대성공을 거둔 거지.
서쪽에서 중앙을 지나 동쪽가지 횡단하는
큰 요로를 정비한 건
원래는 페르치 가문이야.
클로에
굉장하네!
켈빈
북쪽에서 재앙이 내려왔을 때도
페르치 가문의 가호가 있으면 지킬 수 있다고
소문이 나기도 했어.
페르치 가문은 왕가도 민중도,
귀족들도 학자들도 예술가들도
좋아했어.
그래서 페르치 가에 태어난 아이가
마법사여도 다들
축복의 말만을 보냈던 거야.
클로에
그게 라스티카……?
켈빈
그래.
그때 풍요의 거리에서는
사파이어 성에서 태어난 아기를
다들 이렇게 불렀어.
태양과 달에게 사랑받은 아이.
클로에
(……아, 굉장하다……)
(라스티카는 나랑 전혀 달라……)
켈빈
라스티카 님 본인을 만날 때까지
사파이어 성의 귀공자에 대해
나는 이렇게 생각했어.
뭐가 태양과 달에게 사랑받은 아이야.
제멋대로 자라고 욕심이 많은,
참을성 없는 어리광쟁이일 게 틀림없어.
그런데
내가 만난 라스티카 님은
전혀 달랐어.
상냥하고 친절하고, 거드름 피우지 않아서…….
이쪽이 걱정될 정도로
온갖 것을 남에게 줘 버렸어.
클로에
……알 것 같아…….
내가 알고 있는 라스티카야…….
켈빈
하하…….
오랜만에 만나도 변하지 않았네.
……그의 맑은 눈동자…….
그 눈동자 앞에서 나는 자꾸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어.
화를 잘 내고 쉽게 의심하며
인색하고 비관적인 자신을…….
클로에
켈빈…….
켈빈
……나는 음악가가 되고 싶었어.
하지만 서투른 연주를 해서
비웃음 당하는 게 부끄러워서…….
음악가를 찾을 때마다
심술궂게 굴어서 놀려줬어.
진짜 최악인 녀석이었어.
사실 근처에서 음악을 듣거나
악기를 만져보고 싶었을 뿐인데.
나그네 차림으로 피리를 부는 라스티카 님을
보고 웃었어.
저게 뭐야! 이상한 곡! 이상한 노래!
그는 웃고, 그렇지 않아,
멋진 곡이야 라고 했어.
너도 피리를 불어보지 않겠냐고.
나는 신기하게도 처음으로 솔직하게
호루라기를 불어보고 싶다고 말할 수 있었어.
그때부터 라스티카 님이 정말 좋아.
클로에
………….
켈빈
라스티카 님도
나를 좋아해 주셨어.
설탕으로 만든 과자가 달콤하듯이
사랑받는 것이 당연했던 그는
쉽게 사람을 사랑했지.
그에게는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고,
친절을 망설이지 않았어.
물건도 시간도 애정도
그는 아끼지 않고 누구에게나 주었어.
클로에
(……나도 그래…….
받은 사람 중 하나……)
(나에게 있어 라스티카는
특별한 사람이지만……)
(라스티카에게 있어, 나는……)
켈빈
너, 괜찮아?
클로에
아…….
켈빈
안색이 나쁜 것 같아.
달그림자 탓이면 좋겠는데…….
클로에
괜찮아……. 아…….
라스티카를 찾아야지!
아까까지 라스티카,
여기 함께 있었어.
켈빈
알고 있어.
기척이 났으니까…….
지금은 어디 있는 거야?
클로에
그게…….
본 적 없는 마법사가 나타나서
데려가 버렸어.
켈빈
뭐!?
자라가 채갔나!?
라스티카 님께는 지금까지
손을 대지 않았을 텐데.
클로에
자라는 왜
라스티카의 신부를 작은 새로 만든 거야?
그 마녀 때문에
라스티카가 봉변을 당했다면…….
서쪽 나라를 지배하고 있는
그 마녀를 쓰러뜨리면
라스티카는 행복해질까……?
켈빈
라스티카 님은…….
누군가가 쓰러지거나 하는 것으로
행복해지지는 않을 것 같아.
클로에
………….
켈빈
그저 슬퍼할 뿐이야.
그러니까 잊을 수밖에 없었던 거야.
라스티카
………….
멋진 향기가 나는 방에 있었다.
깔끔하고 달콤한 꽃과
갓 구운 과자의 향을 섞은 듯한
단아한 향이다.
그 향기에 싸여 있자
어딘가 그리운 기분이 들었다.
외로움과 기쁨이
부드럽고 달콤한 바람에 섞인다.
그 방은 창문도 훌륭했다.
창문에서는 동트기 전의 하늘과
잘 꾸며진 궁궐이 보였다.
잠이 와서, 자려고 했다.
나는 옷을 벗었다.
벗은 옷을 흩뜨리고
입가를 누르며 하품을 한다.
그때,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벗어놓은 옷을 보고
누군가가 있다면 이렇게 말하는데.
???
안 돼, 라스티카.
구겨져 버릴 거야.
라스티카
미안해.
나는 누군가에게 사과하고 옷을 입었다.
이름은 생각나지 않았다.
빗을 찾아서 머리를 빗었다.
이전에 머리를 빗으며
누군가의 말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때도 같은 향기가 났다.
깔끔하고 달콤한 꽃과
과자의 냄새.
바람에 흔들리는 꽃바구니. 작은 자줏빛 꽃.
눈부시게 빛나는 보석들. 얇은 자기 컵…….
???
라스티카. 나의 천사.
당신을 만난 모든 사람이
행복해질 거예요.
때 묻지 않은 눈동자. 너그러운 마음.
당신은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을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쩌면,
마음이 없는, 듣기 힘든 말을
들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나쁜 말을 입으로 뱉은 사람들을
탓해서는 안 돼요.
화낼 필요조차 없답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은
행운이 없는 불쌍한 사람들.
사랑으로 채워져 있다면
성실하고 선량한 사람들인 거예요.
결코 싫어하거나 적대하거나 하지 말고
당신이 손을 내미세요.
중요한 것은 배려와 상냥함입니다.
우리,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은
올바른 도덕성을 배울 책임이 있어요.
상냥한 라스티카.
많은 사랑을 모두에게 주세요.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도록.
하늘이 밝아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밤하늘의 어둠의 드레스 자락에
검색과 보라색 베일이 나부낀다.
새들이 싱그럽게 울기 시작한다.
내 눈꺼풀은 당장이라도 감길 것 같았다.
침대에 누웠다.
침대에 누우면 나는 행복해졌다.
언제든지 잠을 자도 된다는 것은
자유와 해방과 편안함을 느낀다.
나는 허밍 했다.
나의 노래를 나는 잠이 들었다.
아리아 마스탄드레아는
서쪽 나라의 공주로, 내 약혼자였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를 좋아했다.
그는 여동생 같았다.
우리는 많이 닮았다는 소리를 들었다.
우리는 행복했다.
아리아는 내가 치는 쳄발로를 좋아했고,
나는 아리아의 이야기를 좋아했다.
아리아는 그가 좋아하는 것을
많이 가르쳐 주었다.
반들반들한 구운 과자,
봉랍, 꽃잎을 쪼아 먹는 파랑새, 녹색 구두,
금테두리 단추, 왕궁의 정원.
국왕 폐하, 왕비 전하, 나.
마음에 드는 시종 프란체스카.
비 오는 날 창가에 나타나는 도마뱀.
하지만 그는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아리아에게는 좀 더
좋아하는 것이 있었던 것이다.
왕궁 정원을 산책하다가,
아리아는 굳은 표정으로 털어놓았다.
그는 눈물을 글썽이며
진지한 눈빛으로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죄인처럼.
라스티카
왜 우는 건가요?
아리아는 말했다.
무서워서.
저는 부모님의 말씀을
어긴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처음으로 어깁니다.
제가 털어놓을 비밀을
부디 진지하게 받아들여주세요.
그런 식으로 말하기에 나는 긴장했다.
비밀이라는 것을 가져본 적이
나는 없었으니까.
인적이 없는 나무 그늘에서
아리아는 나에게 비밀 이야기를 했다.
저에게는 쌍둥이 언니가 있습니다.
이름은 자라.
서쪽 왕가에서 쌍둥이는
불길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때문에
마법사로 태어난 언니는
숨어 살아왔어요.
저 탑에 살고 있어요.
예전에 저 탑을 올려다봐 달라고
부탁드린 적이 있습니다.
라스티카
기억해요.
저 창문에 서 있는 새를
올려다보라고.
하지만 새는 보이지 않았어요.
용서해 주세요.
거짓말을 하고 있었어요.
사랑하는 언니 자라에게
제 남편이 될 라스티카 님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라스티카
그랬었군요.
저 탑에, 당신의 언니가…….
부탁이 있어요, 라스티카 님.
평생 조르지 않을 테니,
제발.
제 옷을 입은 자라와
저와 함께 있는 것처럼
왕궁 마당을 산책했으면 좋겠어요.
된다면, 밖으로 데리고 나가주세요.
자라는 왕궁을 나간 적이 없어요.
라스티카
그러니까…….
당신의 언니를 데리고
어디론가 나가면 되는 거군요?
기쁘게, 응하겠습니다.
릴리아나
………….
라스티카
………….
릴리아나
……주무시고 계셔…….
라스티카
……응…….
릴리아나
………….
라스티카
……아직 졸려…….
클로에…….
릴리아나
………….
클로에
……그럼 라스티카는
이대로 계속 잊는 거야?
……나에 대한 것도,
현자님과 모두에 대한 것도, 언젠가…….
켈빈
그렇겠네.
날 잊은 것처럼.
클로에
어……,
어떻게 할 방법이 없을까?
켈빈
넌 말할 수 있어?
그 라스티카 님에게?
라스티카 님이 찾으시는 신부는
이미 죽었다고.
당신이 죽였습니다 라고.
클로에
……윽, ……말…….
말하고 싶지 않아…….
켈빈
그렇지.
그런 말을 하면
지금의 라스티카 님은 없어져 버려.
태양과 달에게 사랑받은
행복한 귀공자는 사라져 버려.
짐승처럼 울부짖고
슬픔에 계속 괴로워하는 라스티카 님은,
이제 보고 싶지 않아.
클로에
………….
켈빈
……이제 갈게.
언제, 어디서 마녀가
이야기를 듣고 있을지 몰라.
여기는 한동안 안 올 거야.
너도 그렇게 하는 게 좋아.
클로에
기다려, 켈빈……!
켈빈
라스티카 님을 부탁해.
클로에
앗…….
……사라졌어…….
………….
사실을 말하면,
지금의 라스티카는 사라져…….
……그럼…….
진짜 라스티카는 뭐야……?
이대로
이젠 없는 신부를 찾아 나서는 게
라스티카의 행복이야……?
하지만……, 그런 끔찍한 일…….
라스티카에게 떠올리게 하고 싶지 않아…….
………….
라스티카를 찾아야 해…….
……우, 우물쭈물거릴 때가 아니야.
우선은 라스티카를 찾고…….
……읏, 내가 라스티카를 도와야 해.
라스티카는 내 은인이니까!
……으, 현자님에게 알리자!
현자님 일행은 코르테제로 돌아가서
서쪽 왕궁으로 향한다고 했지…….
서쪽 왕궁에는 마녀가 있으니까,
라스티카를 찾기 위해서도 나는 먼저
서쪽 왕궁으로 향하는 편이 좋을지도 몰라.
서두르자……!
4화
새벽이 다가오다
시노
여긴…….
브래들리
………….
서쪽 나라라고,
정령의 기색으로 알았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뼈의 괴물이
엄습할 기미는 없다.
무르와 똑같이 생긴 녀석에 대해
피가로는 경계를 풀지 않았다.
미스라는 다른 사람이 만은 구멍으로
공간을 이동한 게 불만인 것 같다.
네로는 다시 의식을 잃었다.
언제 위험한 상태가 될지 모른다.
당장이라도 치료를 받게 하고 싶었다.
마음을 다잡고 있는 시노가
히스클리프를 부축하며
저주상과 네로 사이를 왔다 갔다 하고 있다.
뼈의 괴물에 대해서
이 녀석이 가장 살기를 보인다.
브래들리
물러서 있어, 동쪽의 작은 거.
미스라.
미스라가 시선으로만 나를 본다.
브래들리
깔보게 두지 마.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정신이 산만해지기 쉬운 미스라가
눈앞에 있는 놈들에게 의식을 집중한다.
무르와 똑같이 생긴 녀석이 웃었다.
무르
환영합니다.
저 관을 마음대로 사용해 주세요.
즉시 의료품을 전달하도록 하죠.
부상자가 많은 것 같으니.
시노
네가 할 말이야……!?
네가 거느라고 있는 이 녀석들 때문이잖아!?
히스클리프
시노……!
동료를 엉망진창으로 만든 탓에
시노는 눈꺼풀을 붉히며 격노하고 있었다.
저주상의 수호의 기미가 보이기는 하지만,
이 상황에서 잘 싸워주었다.
시노의 담력에 감탄했다.
피가로
바로 데려와 줘.
치료행위에 익숙한 이들도 여럿.
피가로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무시무시한 노기가 전해져 왔다.
무르
알겠습니다.
도와드리고 싶은 바입니다만,
가야 할 곳이 있어서요.
피가로
어디에?
무르
현자님을 모시러.
피가로가 눈살을 찌푸렸다.
나도 불쾌함을 기억하고 있다.
그 무르를 현자에게 가까이 두고 싶지 않다.
브래들리
(미스라를 데려가게 할까?
하지만 이쪽이 허술해져)
(이 무르는 아마, 이야기로 들은
영혼 조각이 실체화된 무르다.
영혼 조각이 있는 곳은 저 고양이겠지)
(저 고양이를 장총으로 쏴버릴까?
그때 뼈 괴물들은 어떻게 반응하지?)
재빠르게 생각하는 동안
피가로가 의식이 없는 파우스트를
레녹스에게 맡겼다.
피가로
미안해.
너도 다쳤는데.
레녹스
아뇨…….
다음 순간에는,
마도구인 오브를 출현시켰다.
브래들리
(이 녀석도 성격이 급해)
쌍둥이와 닮은꼴에 나는 질렸다.
상식인인 것에 비해 손이 빠르다.
네로를 안은 채 피가로에게 말했다.
브래들리
남쪽 의사.
네놈은 부상자를 돌봐.
할 거면 내가 하지.
미스라
제가 마무리할게요. 이 녀석들 전부.
무르는 겁먹지도 않았다.
무르
무슨 일 있으신가요?
피가로
서둘러 부상자를 돕고 싶거든.
치료 중에 습격당하면 곤란해.
그것들을 먼저 치울게.
무르
당신들을 습격할 생각이라면
여기에 데려오지 않았습니다.
브래들리
현자에게 무슨 볼일이지?
무르
현자의 마법사들을 모두
여기 모으는 게 제 역할입니다.
아, 그렇군.
한밤중에 할 필요는
없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것 때문에 수상하다고 여기고 계신가요?
낮에는 제대로 된 행동이라도,
밤에는 위험한 행동으로 변해 버린다.
이것이야말로 세상의 불가사의…….
미스라
《아르시무》
미스라의 마도구인 해골이 쏘아 올린
눈보라를 동반한 푸른 불꽃에
무르의 모습은 소멸되었다.
나도 피가로도 말문이 막혔다.
무르의 발밑에 있던 고양이가
뛰어올라 멀리 도망간다.
멀리 간 고양이 위에
다시 무르의 모습이 떠올랐다.
무르
이런 이런.
북쪽 마법사는 성질이 급해.
자, 너. 다시 한번
저 사람들에게 다가가 줄 수 있니?
무섭지 않아. 부탁이니까…….
멀리서 투덜투덜
뭔가 말하고 있는 무르를 무시하고
미스라는 나를 돌아보았다.
미스라
제가 현자님을 데려올게요.
브래들리
그거 나쁘지 않은데.
장소는 알아?
기척을 찾으면 어떻게든.
뭐, 가볼게요.
서쪽 나라에 있는 것 같으니까.
그렇게 말하고
미스라는 내 품에 안긴 네로를
힐끗 보았다.
나는 반사적으로
미스라에 대해 경계했다.
미스라
그 사람, 죽나요?
질문의 의미를 모르고
나는 무의식적으로 긴장하고 있었다.
돌을 달라고 말할 셈인가?
브래들리
안 죽어. 끈질기거든.
미스라
그런가요. 다행이네요.
시노가 도와달라고 했거든요.
인간미 있는 대사에 나는 귀를 의심했다.
북쪽 미스라의 발상이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는다.
미스라는 네로를 응시한 채
미소를 짓기까지 했다.
미스라
그럼 다녀올게요.
브래들리
그래, 부탁한다.
미스라
《아르시무》
밤바람을 남기고 미스라는 사라졌다.
고개를 들자 피가로와 눈이 마주쳤다.
그도 미스라의 모습에 놀라고 있었다.
말없이 서로 눈을 돌린다.
피가로
서두르자. 레노, 이리로.
히스클리프는 걸을 수 있어?
히스클리프
……윽, 괜찮아요.
시노
내가 부축할게. 파우스트는?
레녹스
호흡이 얕아.
어서 침대에 눕히자.
시노
브래들리!
브래들리
지금 간다! 네로라면 괜찮아.
칠흑 같은 어둠이었던 밤하늘의 기슭이
푸른빛을 띠기 시작했다.
새벽이 다가온다.
오즈의 마력이 돌아올 시각이다.
현자나 젊은 마법사들이
이곳으로 모여 뼈 괴물들에게
습격받는다 해도 괜찮겠지.
안도를 떠올리는 자신을 깨닫고
나는 섬뜩해졌다.
오즈의 존재에 안도를 느낀다니,
당치도 않다.
무슨 잠꼬대를 하고 있는 건지.
나 혼자서 돌아다닐 각오를 해.
도울 수 있는 상대는 한정되어 있다.
우선순위를 매기고 나머지는 잘라 버린다.
전방을 노려보며 나는 걷기 시작했다.
루틸
이제 곧 새벽이네요…….
오즈
그렇군…….
루틸
미틸과 리케는
잠들어 버렸어요.
분명 피곤했을 거예요.
오즈
………….
어째서…….
루틸
네?
오즈
어째서 아이를 낳았지?
루틸
………….
아……, 안 낳았어요…….
오즈
아아……. 그랬지.
루틸
아하하…….
어머님 말씀이세요?
오즈
그래.
루틸
그렇게 닮았나요?
미틸 정도의 나이 때는
자주 들었는데.
오즈
닮지 않았다.
하지만, 모습이 생각났어.
그러다가 섞여버렸다.
루틸
재미있는 이야기네요.
……어머니와는 친하셨나요?
오즈
아니…….
그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루틸
………….
오즈
이제 와서 할 이야기가 있다.
루틸
무엇인가요?
오즈
………….
아이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것이 있는지…….
루틸
혹시 오즈 님은
아서 님께 알리고 싶지 않은 것이
있나요?
오즈
………….
루틸
아……, 죄송해요…….
왠지 그런 것 같아서.
오즈
………….
이야기를 해둘 걸 그랬군.
루틸
어머님과?
오즈
그래. 그건 말이 많았다.
루틸
아하하. 알아요.
오즈
……타인이 말을 할 때마다
타인의 마음이 내 안으로 들어온다.
그것이 나는 싫었다.
루틸
………….
오즈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것의 이야기를 들을 걸 그랬어.
루틸
……왜 싫었나요?
오즈
……그렇군…….
나는 모르기 때문이다.
알려고 해도, 알 수 없어.
그러니 남의 말은 듣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나에 대한 것도 모른다.
그러니……,
나에 대한 것도 말로 하지 못해.
말로 하면 틀리고 말지.
틀린 것을
계속 건네주어 피폐해져 간다.
루틸
………….
오즈
……어째서 울지?
루틸
……죄송합니다…….
저도, 분명 똑같아서…….
오즈
너는 말을 잘한다만.
루틸
아하하…….
하지만, 사실은 같아요.
이야기를 들으려는 마음으로,
제대로 이야기하려는 마음으로…….
그런데 이해하지 못하거나
잘 전달되지 않기도 해서…….
……상처받거나,
상처를 입히기도 하고…….
……상냥하게 대하고 싶은데…….
오즈
그런가…….
마음씨 착한 너에게도
어려운 일이라면
누구나 어려운 일이겠지.
그건 성질이 사나웠지만,
너는 마음이 상냥해.
루틸
오즈 님도 상냥한 분이세요…….
오즈
……그건 아니다.
루틸
말씀도 잘하세요.
오즈 님의 마음이 전해졌어요.
전해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어요.
오즈
………….
리케가 말한 것이다.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루틸
네……?
오즈
……하늘이 밝아지는군.
루틸
해가 나올까요?
오즈
아직 이르다.
루틸
해보시면
될지도 몰라요.
부탁드려도 될까요?
오즈
알았다.
루틸
여기 앉으세요.
잠들어 버렸을 때
넘어져서 머리를 다치지 않도록.
오즈
이렇게인가.
루틸
네! 부탁드립니다!
오즈
………….
《복스노……》
쿨…….
루틸
아앗!
아직 조금 일렀다……!
5화
아무도 잃고 싶지 않아
나는 무르와 샤일록,
그레고리와 무르의 조각과 함께
한밤중의 하늘을 날고 있었다.
한번 코르테제 성으로 돌아갔지만
다들 마음이 안정되지 않아
클로에 일행에게 전갈을 남기고 떠나기로 했다.
서쪽 마법사와의 여행인데
다들 말이 없었다.
낮의 피로가 엄습해
나는 샤일록의 빗자루 위에서
졸 뻔했다.
무르
떨어질 거야, 현자님.
아키라
…………헉!
샤일록이 놀라서 나를 돌아보았다.
눈썹을 구부리고 미소 짓는다.
샤일록
눈치채지 못해 죄송합니다.
인간인 현자님께는
조금 여유가 없는 여행이었네요.
빗자루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마법을 걸 수는 있지만,
어디선가 주무시겠어요?
아키라
괜찮아요.
혹시 모르니 떨어지지 않게
해주시면…….
미스라
《아르시무》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울렸다.
밤하늘에 갑자기 공간의 문이 드러나면서
미스라가 모습을 드러낸다.
아키라
미스라.
볼을 느슨하게 한 미스라는
사크 짱을 보고 노골적으로 싫은 표정을 지었다.
미스라
아직도 그런 걸 달고
있나요?
사크 짱은 신경 쓰지도 않고
코끝을 내 어깨에 비비고 있었다.
미스라는 나에게 다가와
먼지라도 털듯이 휙휙 손을 흔들었다.
그레고리가 뛰어오른다.
미스라
뭔가 다른 것도 많이 있네요.
그레고리
왁, 위험……!
미스라
심지어 이쪽은
아까 못 죽인 거잖아요.
무르
혹시, 나 말하는 건가?
샤일록
무르를 죽일 뻔했나요?
무르
누가? 미스라가? 오즈가?
샤일록이?
아키라
자, 잠시만요, 미스라.
떨어뜨리지 마세요.
그레고리와 영혼 조각의 무르를
양팔에 안고 감싸면서
미스라에게 묻는다.
아키라
죽여버릴 뻔했다는 건
영혼 조각의 무르 말인가요?
무르와 어디선가 만났나요?
미스라
영혼 조각?
아, 그러고 보니 그런 이야기
어디선가 들었네요.
어쩐지 묘한 느낌이었어요.
고양이를 타고 있었고.
아키라
고양이?
무르
좋겠다~!
나도 고양이에 타고 싶어!
무르
나 말고 다른 영혼의 조각들도
인생을 즐기는 것 같아 다행이야.
샤일록
영혼 조각의 무르를 죽였나요?
죽인 무르는 조각으로 돌아갔나요?
아니면 소멸했나요?
무르
연구 열심히 하네, 샤일록!
무르
논문이라도 쓸 생각이야?
샤일록
무르, 입 다무세요.
미스라, 무르는 어떻게 됐나요?
미스라
고양이 위에 타고 있어요.
현자님을 모시러 간다고 하길래
제가 대신 온 거예요.
미스라는 눈썹을 치켜세우고 있었다.
뭔가 그를 불쾌하게 할 만한
일이 있었던 것 같다.
아키라
어째서 영혼 조각의 무르와
싸우게 됐나요?
미스라
뼈 괴물 인형을
부추겨서 덤벼들게 했으니까요.
파우스트와 네로는 죽을 뻔했고,
히스클리프와 레녹스도
당했습니다.
아키라
네……!?
나는 머리가 하얘졌다.
쿵쿵 심장이 뛰고 시야가 좁아진다.
아키라
왜……, 왜…….
미스라
그러니까, 뼈 괴물 같은
인형 같은 것에 습격당했어요.
저는 이겼습니다, 당연히.
파우스트와 네로가 죽기 직전에
히스와 레노가 부상을…….
그들의 웃는 얼굴이 뇌리에 떠오른다.
그걸 잃을까 봐
공포에 질릴 뻔했다.
지금까지도 위험한 장면은
여러 번 마주쳤다.
목숨을 잃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항상 다녀오라고
내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이별의 각오 같은 건,
한 번도 하지 않았어.
아키라
(어쩌지, 어쩌지, 어쩌지)
불안과 혼란에 숨을 헐떡이며
무의식 중에 미스라의 팔을 잡는다.
아키라
사……, 살았나요?
미스라
아마도요. 피가로가 같이 있어요.
아키라
……하아…….
크게 숨을 내쉬고
나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안도했다.
안심하는 순간, 욱하고 속이 삐걱거리며
덜덜 손가락이 떨리기 시작했다.
죽어가고 있다는 말을 듣고
괜찮다는 말을 들을 때까지
시간으로 치면 몇 초의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원한 길이로 느껴졌다.
무의식적으로 나는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아키라
……흑, 다행이다…….
만날 수 있을까요? 사람들이 있는 곳에
데려다주시겠어요?
미스라
좋아요. 당연하죠.
미스라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샤일록
현자님…….
샤일록이 어깨를 끌어당긴다.
안심하는 순간
몸이 비스듬히 기울어진 모양이다.
내 품에서
영혼 조각의 무르가 말했다.
무르
뼈 괴물 인형…….
인조 마법사일 가능성이 높아.
샤일록
인조 마법사?
마법사를 만들었다는 건가요?
당신은 또 그런 것을…….
무르
만들지 않았어.
하지만 연구실에 설계도는 남아 있지.
누군가 발견하고 인조 마법사를
완성했을지도 모르겠네.
미스라
《아르시무》
미스라가 공간의 문을 연다.
창백해진 나를 배려하듯
그레고리가 속삭였다.
그레고리
괜찮으신가요?
아키라
네에…….
새의 모습을 한 그의 동그란 눈동자가
잔잔한 미소를 띤 것 같았다.
그레고리
상냥하신 분.
현자님의 마법사는 행복하겠네요.
이렇게나 걱정해 주시니…….
나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 중 누구 하나라도 없었다면
나는 지금 여기에 없을 테니.
모두에게 도움을 받은 덕에
이 세계에서 살고 있다.
아무도 잃고 싶지 않아.
미스라
《아르시무》
미스라가 데려온 곳은
낯선 방이었다.
피가로
현자님.
아키라
피가로…….
그에게 말을 하려다
그 손가락이 빨갛게
더러워진 것을 깨달았다.
시선을 떨어뜨리면 침대 위에
상처투성이의 파우스트가 누워 있다.
아키라
…………!
소리를 지를 뻔해서 나는 입을 막았다.
놀란 그레고리가 날갯짓한다.
새의 모습을 보고 피가로가
파우스트의 몸에 시트를 덮었다.
피가로
예쁜 새네. 아, 사람인가?
미안하지만, 치료하는 동안에는
밖에 나가있을 수 있을까?
아키라
죄, 죄송해요.
피가로, 파우스트는
괜찮은 거죠?
피가로는 나에게 눈을 마주쳤다.
믿음직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피가로
물론이지.
피가로 선생님이 붙어있으니까.
아키라
다행이다…….
잘 부탁드려요!
피가로는 진색 눈동자에
온화한 상냥함을 풍겼다.
기분 탓일지도 모르지만,
어딘가 기뻐 보였다.
피가로
응. 맡겨줘.
아키라
네로는? 네로는 무사한가요?
피가로
이대로 안정을 취하면 괜찮아.
무리하면 목숨을 잃을 거야.
저쪽 방에 있어.
아키라
감사합니다!
상황을 보고 올게요.
피가로
아, 혼자 가지 말아 줘.
샤일록, 현자님을 부탁해도 될까?
샤일록
네. 여긴 위험하다는 말씀이신가요?
현자님을 혼자 둘 수 없을 정도로.
피가로
그렇지.
사정은 나중에 설명할게.
미스라, 루틸을 데리고 와.
미스라
하?
피가로
손이 모자라.
네로나 히스의 상태도 보고 싶고.
아마 서쪽 나라에 있으니까.
미스라
싫어요.
피가로
왜.
미스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올려다보니 기분 나쁜 얼굴을 하고 있다.
아키라
……싸웠나요?
미스라
그 사람이 아무것도 모르는 거예요.
피가로
부탁해, 미스라. 서둘러.
내친김에 오즈도 찾아줄래?
미스라
절대 싫어요.
그때,
내 가슴 주머니에서 목소리가 났다.
무르
협력하지.
다음 순간,
영혼 조각의 무르가 커졌다.
피가로와 미스라가
그의 모습을 보고 표정을 험악하게 했다.
영리한 눈동자를 가늘게 뜨고 무르가 웃었다.
무르
이래 봬도 의학박사니까.
영혼 조각의 무르는
샤일록의 머리에 손가락을 뻗었다.
거의 머리끈을 잡는다.
샤일록은
귀찮은 듯이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뺏은 머리끈으로 자신의 머리를 묶으며
무르가 나를 재촉했다.
무르
가시죠, 현자님.
가슴 주머니에 넣은
퍼플 사파이어 조각을 누르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방을 나서자마자 미스라를 올려다본다.
아키라
루틸을 부탁해도 될까요?
미스라…….
미스라
………….
미스라는 불만스럽게 입을 구부렸다.
마지못한 느낌으로 숨을 내쉰다.
미스라
이번만이에요.
아키라
죄송해요. 부탁드려요.
미스라
《아르시무》
공간의 문 너머로
미스라는 사라져 갔다.
내 등을 만지고
샤일록이 걷기 시작한다.
그 등을 경쾌한 몸놀림으로
쫓아가려던 무르를
피가로가 불러 세웠다.
피가로
무르, 기다려.
무르
왜?
무르
무슨 일이죠?
피가로
으음……. 성가시네.
샤일록에게 키워지는 쪽.
도와줘. 의학박사잖아?
무르
잊어버렸을지도?
피가로
알려줄게.
아아, 아무래도 기시감이 든다 했더니,
마법관에서의 수업이네…….
피가로는 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남쪽 나라 마법사들이
치유마법 수업을 하고 있었던 게
먼 옛날 일 같다.
레녹스
실례합니다. ──현자님.
문을 나서기 직전,
레녹스가 뛰어들어왔다.
그의 옷에도 피가 배어 있었다.
무언가 말하려는 나를 알아채고
그는 미소 지었다.
레녹스
괜찮습니다, 찰과상이에요.
네로와 히스클리프를
문병해 주세요.
이 새는……?
새는 함께 있지 않는 편이
좋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레고리
그렇네요.
현자님, 저는 잠시
곁을 떠나 있겠습니다.
그레고리의 목소리를 듣고
레녹스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손을 재빠르게 움직이면서
피가로가 쓴웃음을 짓는다.
피가로
너, 변화된
새의 기척쯤은 알아봐야지.
파우스트한테 혼날 거야.
레녹스
그렇네요.
그들의 부드러운 목소리는
마치 기도를 외우는 것 같았다.
파우스트가 눈꺼풀을 뜨는 순간을,
기도하듯 기다리고 있다.
믿고 있다.
나는 샤일록과 함께
네로가 있다는 방을 방문했다.
거기에는 시노가 있었다.
영혼 조각의 무르를 보자마자
표정을 바꾼다.
마도구인 큰 낫을 꺼내
좁은 실내에서 한 번 번쩍였다.
영혼 조각의 무르는
순간 쭈그리고 앉아 피했다.
조금 늦었다면 목이 없어졌을 것이다.
무르
나는 꽤
원한을 사고 있는 것 같네.
샤일록
늘 그렇잖아요.
시노, 이 사람은 서쪽 왕립식물원에서
주운 무르의 영혼 조각입니다.
당신들, 동쪽 마법사를
덮친 인물과는 다른 무르의 조각이에요.
시노
………….
시노는 조심스럽게
살피듯 우리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의 날카로움이나 여유가 없기 때문에
상당히 끔찍한 체험을 했으리라고
상상이 됐다.
시노는 겁을 내지 않는
자신감 넘치는 마법사였다.
그의 가벼운 말투는 항상 나를 웃게 만들었다.
그런 그가 온몸으로 기를 쓰고 있었다.
그래야만 하는 상황에 있었던 것이다.
짧게 숨을 내쉬고 시노는 마도구를 사라지게 했다.
시노
미안했어.
현자, 네로를 문병해 줘.
침대 위의 네로는 눈을 감고 있었다.
네로의 얼굴을 조용히 내려다보며
시노가 중얼거린다.
시노
피가로가 말하길,
네로가 제일 깊은 상처를 입었대.
네로가 처음 공격을 받고
충고해 준 덕분에
우리도 살았어.
시노는 곧게 내 얼굴을 본다.
시노
눈을 뜨면 칭찬해 줘.
아키라
알겠어요…….
시노는 다치지 않았나요?
위험한 장소에 가게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그렇게 말하려다
브래들리의 말이 생각났다.
역할을 명한다면,
미안하다는 표정을 짓지 마.
긍지를 줘.
긍지를 주다…….
어떤 말을 해야 할까.
그렇게 생각하며 시노를 바라보다가
그의 굳은 표정에 이런저런 생각이 떠올랐을 때
깨달았다.
파우스트도 네로도 중상을 입고
히스클리프도 다쳤다.
상상도 못 할 것 같은
불안한 상황에서 시노는 분투해 주었다.
아까 큰 낫을 휘두른 것도
홀로
동료를 지키려고 했기 때문이다.
아키라
시노…….
감사합니다.
당신 덕분에
파우스트도, 네로도, 히스도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어요.
제가 모두를 만날 수 있는 것도
시노가 목숨을 걸고
열심히 해준 덕분이에요.
시노가 있어줘서 다행이야.
……정말 고마워요…….
시노가 놀란 듯이
붉은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노을의 파도가 치는 것처럼
완만하게 그의 눈동자가 흔들려 간다.
울먹이는 웃음에 가까운 표정.
그런데 그렇게 말하기에는 너무나
대담하고 자랑스러웠다.
시노
뭐, 그렇지.
눈꺼풀이 확 뜨거워질 것 같아서
나는 시선을 돌렸다.
잠든 채인 네로를 내려다본다.
그는 이런 식으로 자는 얼굴을 보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겠지.
피가 흐르지 않는 것 같은
새하얀 피부가 애처로웠다.
아키라
감사합니다, 네로.
당신도…….
목소리가 떨린다.
샤일록이 부드럽게 내 어깨를 만졌다.
눈을 내리깔고 그는 속삭였다.
샤일록
괜찮으신가요, 현자님.
아키라
네…….
샤일록, 무르.
네로를 맡겨도 될까요?
히스클리프를 만나고 싶어요.
시노, 지금 만날 수 있을까요?
시노
안내할게.
샤일록, 네로를 부탁해.
샤일록
알겠습니다.
시노, 현자님 곁에 있어주세요.
무슨 일이 생기면…….
시노
알아.
괜찮아. 브래들리도 있어.
아키라
브래들리가?
시노
아까까지 여기 있었어.
나랑 교환하듯이 나갔어.
멀리서 보고 있겠대.
아키라
멀리서…….
시노
무슨 일 있으면 저격한대.
너, 머리가 뚫리지 않아서
다행이네.
영혼 조각의 무르가 어깨를 움츠린다.
나는 방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어딘가에서 지켜봐 주고 있는
누군가의 낌새를 느낀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누군가가 나를 지켜주고 있다.
하느님보다도, 가까운 거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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